[한국문화] 조선왕릉과 조선의 정치
- 최초 등록일
- 2012.01.25
- 최종 저작일
- 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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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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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조선의 왕릉
Ⅱ.조선의 풍수지리
Ⅲ.건원릉, 헌릉, 영릉
Ⅳ.정릉, 태릉, 강릉
Ⅴ.참고문헌
본문내용
단릉(單陵)
왕과 왕비의 봉분을 별도로
조성한 단독 형태
<태조의 건원릉 ∙
순조의 인릉 ∙중종의 정릉>
쌍릉(雙陵)
한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우왕좌비(右王左妃)의 원칙에 따라 나란하게 조성한 형태
<태종 ∙ 원경왕후 민씨의 헌릉>
조선의 풍수지리
조선의 풍수지리상 좋은 곳은
혈자리(왕릉)를 산이 감싸고 또 아래로는 강이 흐르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조건으로 뒤쪽에 있는 배산(背山)이 바람을 감추는 장풍(藏風)조건을 갖추어야 하며, 임수(臨水)에 해당되는 왕릉 앞쪽의 물줄기는 생동하는 기운의 방위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있었다.
이를 장풍(藏風)과 득수(得水)를 줄인 말이 풍수(風水)라는 말이 되었다.
3. 건원릉, 헌릉, 영릉
3-1.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
1.건원릉의 억세풀
태조는 한양에 자신의 능을 조성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함흥으로 돌아가고 싶어했으나
태종은 그의 유언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첫째로 조선의 첫 왕릉을 한양과는 동떨어진
함흥에 만들 수는 없었다.
둘째로 함흥은 북쪽이라 여진족의 침략으로 인한
훼손의 여지가 많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