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리장엄
- 최초 등록일
- 2012.01.19
- 최종 저작일
- 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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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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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사리신앙과 탑파의 발생
1. 광의의 사리
2. 사리장엄과 사리구
3. 사리장치
Ⅱ. 인도․중국․한국의 사리장치
1. 인도
2. 중국
3. 한국
Ⅲ. 한국의 사리장치
1. 고신라
2. 통일신라시대
3. 고려
4. 조선시대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사리신앙과 탑파의 발생
석가모니께서 B.C 480년 경(일설에는 386) 중인도의 쿠시나가라(Kusinagara)의 사라쌍수 밑에서 열반(涅槃)에 들어 80세의 생애를 마치자 그 제자들이 유체(遺體)를 인도의 장법에 따라 다비(茶毘, 화장)하니, 이때 나온 유골이 사리(舍利)이다. 이를 진신사리(眞身舍利) 또는 육신사리(肉身舍利)라고도 하며 이러한 성자의 사리를 봉안하고 예배하기 위해 건립된 축조물이 탑파(塔婆, 줄여서 탑)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리와 탑파의 관계는 마치 인체에서의 장기(臟器)와도 같은 것으로 분리해서는 생각할 수 없다.
1. 광의의 사리
사리는 범어(梵語:Sanskrit)의 Sarira를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인데, 원래는 신체라는 뜻이나 불교에서는 석존의 신골을 뜻하며 불교도들에게 가장 성스러운 예배대상이 된다. 그리고 사리는 불사리(佛舍利)와 법사리(法舍利)로 나누어지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시대가 내려옴에 따라 승려의 화장골까지도 합하여 넓은 의미에서 사리라고 통칭한다. 그리고 법사리란 석존의 정신적 유산인 불경(佛經)을 비롯하여 치아(佛齒), 손톱(佛爪), 머리카락(佛髮), 석존 재세시에 사용하신 옷, 바리때(鉢), 지팡이들도 포함하여 부르는 말이다. 사리는 그 수가 극히 한정되어 있으므로 사리를 대신하여 벼(稻), 우황(牛黃) (소 뼈 속의 結石으로 이를 如意珠처럼 생각하였다고 한다)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석가의 가르침으로 널리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마치 벼가 성숙하고 결실하여서 볍씨가 되어, 그 한 알이 곧 싹이 나고 잎이 나며 이삭이 나와, 수없이 많은 수의 벼를 생산하듯이, 크게 인류를 구한다는 의미에서 사리를 대신하였던 것이다. 우리 나라 탑에서 간혹 종자가 발견되는 일 -의성 관덕동 석탑- 이 있는데, 이런데서 그 연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석존의 입멸 후 5~6세기까지 부처님을 형상화하지 못한 이른바 무불상(無佛像)시대에도 불교신앙은 불탑을 중심으로 하는 사리신앙이 주가 되었다. 사리는 종자(種子:bija)로 부르고, 사리를 봉장하는 반원형의 스투파는 사리를 봉안하는 알(卵:anda) 또는 태(胎:garbha)로 불러왔는데, 적어도 인도에서는 이러한 형태로 석존은 오래오래 삶을 이어나간다고 하겠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