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 조명희론
- 최초 등록일
- 2002.10.28
- 최종 저작일
- 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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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그의 현재적 의미
2) 스산한 내면 풍경
3) 문학사적 자리
본문내용
1) 그의 현재적 의미
포석 조명희는 해금 작가 중에 연구의 현재적 의미가 크다. 그 이유는 구소련에 살고 있는 한국 교포들 사이에 그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높은 관심도를 잘 반영하는 것이 그에 대한 활발한 기념사업 활동이다. 그의 문학 유산위원회 건설과 기념관 건립과 그의 이름을 딴 거리 지정 들이 그 예의다.
그는 여러 가지로 의미와 특징이 많은 자가이다. 그 하나가 해금작가 중에서도 그는 특이한 작가였다. 그는 월북작가가 아니면서, 그렇게 취급되었다. 카프에 가담하여 활동하려다. 러시아로 망명하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자유롭게 연구할 수 없는 금단의 작가로 규제를 맏았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그의 연구도 미개척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해금이후에 연구의 관심이 높아졌다. 특히 재소한인들의 높은 관심에 자극이 되어, 국내에서도 그의 연구가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그는 근대문학 초창기에 선구적 업적을 뚜렷이 남겼다. 이를 세 국면으로 나누어 살필 수있다.
첫째 민족극 운동의 희곡 작가로 활동한 업적이다. 그는 1920년 봄에 김우진, 최승일, 김영팔 등과 함께 동격 유학생 중심으로 '극예술협회'를 조직하여 민족극 운동을 전개했다. 이 때 공연된 희곡이 바로 그가 쓴 "김영일의 사"였다. 이 연극은 비록 학생극운동의 성격을 띠었지만 민족주의 신극운동을 개척한다는 점에서 희곡사적 의미를 가진다. 이 연극운동에 대해 이두현은 "1920년대 참신한 연극운동으로 근대극을 처음 수용한 선구적 의미를 갖는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