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희론
- 최초 등록일
- 2006.11.15
- 최종 저작일
- 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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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포석 조명희에 대한 고찰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생애
2. 조명희의 초기 詩 세계
3. 단편소설과 소련 망명 이후의 작품 세계
4. 작품분석 - <洛東江>
Ⅲ. 결 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 론
抱石 趙明熙(포석 조명희)는 시집 『봄 잔디밭 위에』를 펴낸 시인이요, 연극 운동가이며, 작가이다. 하지만 그는 「낙동강」이란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그는 192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일제의 강압으로 인해 소련으로 망명한 작가로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최근에 들어서야 그의 창작집이 다시 출판되고, 그의 문학에 대한 재조명이 시작되고 있다.
그의 문학에 대한 평가는 발표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판이하게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1920년대 식민지 백성의 거짓 없는 생활 기록으로 사회주의 운동의 좌절과 극복 의지를 드러낸 수작으로 보는가 하면,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문학 작품으로서의 성과에 실패했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조명희는 이 때문에, 그리고 카프에서의 그의 비중과 역할, 러시아로의 망명 같은 문학 활동 이회의 문제들 때문에 온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편이다. 그는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문학사에서 실종된 채 다만 망명 작가로 묻혀져 있었던 것이다.
이 보고서에서는 그동안 묻혀져 있던 조명희의 생애와 그의 초기 시의 작품세계, 그리고 그의 망명후 소련에서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Ⅱ. 본 론
1. 생애 - 抱石 趙明熙(포석 조명희 : 1894~1942)
조명희는 1894년 충북 진천군 진천면 벽암리에서 4형제 중 막내로 태었났으며, 호는 抱石(포석), 또는 包石(포석), 木星(목성), 蘆笛(노적) 등이 있다.
조명희는 한문과 한글에 모두 능한 모친 밑에서 고향의 서당에 다니며 천자문을 배우고, 진천의 사립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신식 교육을 받는다. 어릴적 부친을 여의고 편모 슬하에서 자란 조명희는 어머니와, 구한말의 관리로 자작 한시집(漢詩集)을 묶을 정도로 한학에 일가를 이룬 선비였던 맏형 조공희(趙公熙)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어머니에게서는 다정다감한 정서를 물려받아 남달리 자애로운 심성을 지니게 되고, 한학자로서 지리산에 칩거하며 망국의 울분을 달래던 맏형 조공희의 정의감과 지사적 기개를 본받게 된다.
조명희의 집안은 대대로 상당한 권력과 부를 누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가문의 권력에 못지 않게 경제적으로도 대단히 부유하였으나 포석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가문이 몰락하여 생활고에 시달리는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고, 이 때문에 포석은 진학을 포기하고 한동안 집안 일을 도우며 지낸다. 1907년 13세의 어린 나이에 네 살이나 연상인 여흥 민씨와 결혼하고, 얼마후 서울 유학으로 중아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그는 당시 청년들 사이에 널리 확산된 영웅숭배열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고 유럽의 영웅소설을 번안한 소설들을 탐독하면서 구국의 영웅을 꿈꾸게 된다. 1924년 봄 중앙고보를 중퇴하고 북경사관학교에 입하하기 위해 가출하나 실패로 끝나고, 뜻을 이루지 못한 울분을 달래며 신소설을 비롯하여 국내외 소설을 낭독하게 되는데 이 무렵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읽고 감동을 받아 문학에의 뜻을 품게 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