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기스칸 리더십
- 최초 등록일
- 2011.10.07
- 최종 저작일
-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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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징기스칸 리더십
목차
1. 징기즈칸의 소개
2. 이론 통해서 본 징기즈칸
3. 징기즈칸 VS 진시황
4. 결 론
본문내용
앞부분 나레이션으로 읽고 시작
징기스칸 어록
-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쫒겨 났다.
- 가난 하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내 일이다.
-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마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만 10만, 백성은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백만도 되지 않았다.
- 배운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찰출했고,, 빰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을 모두 쓸어 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징기스칸이 되었다.
본명 : 태무진
(몽골어로 ‘철’이란 뜻)
본명의 유래 : 당시 적군의 용사를 생포했을 경우 그 용사의 이름을 신생아에게 주면 아이가 용맹해진다는 신앙이 있기 때문에 징기즈칸이 태어날 당시 부족에 태무진이라는 용사의 이름을 갖게 됨.
초원 유목민의 고대 정주민에 대한 침략의 화신으로, 인류의 재앙 가운데 하나로 여겨져 왔다. 동부 이란의 파괴는 유럽이 앗틸라의, 혹은 인도가 미히라쿨라의 탓으로 돌린 그 어떤 것보다 끔찍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 몽골 정복자들이 수행한 집단 처형은 전쟁 체계의 일부가 되었다. 그것은 빨리 항복하지 않은 정주민족들에게, 그리고 항복한 뒤에 다시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에게 가해진 유목민의 무기였다. 슬픈 일은 이 유목민이 농경과 도시 경제의 본질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칭기스칸은 동부 이란과 북부 중국을 정복하고서 도시와 전답을 파괴하여 초원으로 바꾸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문명의 문턱과 오래된 경작지 언저리에 대한 약탈이라는 유목 전통에서 그도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칭기스칸은 그의 생활방식과 환경과 종족이라는 틀 안에서 사려깊은 심성과 건전한 상식을 가진 균형잡힌 사람이자 남의 말도 잘 경청하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는 행정가로서의 자질도 있었으나 그것은 유목민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고, 정주민족의 경제에 대해서는 극히 미미한 개념밖에 없었다.
칭기스칸은 자신의 정책에 확고하면서도 개화된 사람의 경험의 소리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많은 조언자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타타통아 같은 위구르인, 마흐무드 얄라바치같은 무슬림, 야율초재같은 거란인들이 그들이다. 칭기스칸은 그들 중에서도 투르크 - 몽골 세계에서 가장 개화된 민족들인 거란과 위구르에 특히 끌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거란인들은 칭기스칸 일족의 제국에게 몽골인들의 민족성을 박탈하지 않고 중국문화를 전수할 수 있었으며, 위구르인들은 오르콘과 투르판의 고대 투르크 문명에서, 시리아와 마니교 - 네스토리우스교 및 불교적 전통이 남긴 모든 유산에서 그 일부를 몽골인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