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역사 - 단군신화와 고조선
- 최초 등록일
- 2011.09.03
- 최종 저작일
- 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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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민족의 뿌리인 고조선의 역사에 대한 잘못된 역사인식의 문제점을 파헤치며, 올바른 역사인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견해를 담은 논평입니다.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의 순서로 논지가 전개되며,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A+ 받은 자료로서 많은 이용 부탁드립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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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두 번째 쟁점은 기자의 동래이다. 중국 기록에는 기자를 은나라의 현인이자 은 · 주 교체기에 주나라 무왕에 의해 고조선의 제후로 봉해져 고조선에 문화를 전파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기록을 근거로 조선시대 사대주의자들은 소중화사상에 입각하여 기자를 숭앙하며 우리 민족의 자주적 문화 정체성을 깎아내렸다. 그러나 중국 은나라 청동문화의 대표적 유물은 제사용 솥인 제기(祭器)인데 비해 조선 청동문화의 대표적 유물은 비파형 동검이다. 게다가 은나라의 갑골문자는 고조선의 영역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 민족의 문화는 중국의 아류가 아닌 자주적 문화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중국 진시황 때의 분서갱유 사건 이전과 이후의 기록은 기자에 대해 중요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진나라 이전시대에는 기자를 덕과 학문을 갖춘 현자로만 기록한 반면, 진나라 이후시대, 특히 중국적 세계질서를 확립하려 했던 한나라 시대 기록에는 기자의 동래를 언급하고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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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용, 「북한 학계의 단군 인식과 ‘단군릉’ 발굴」, 『역사비평』 2000년 가을호, 역사비평사
김기흥 「고조선」, 『새롭게 쓴 한국고대사』, 역사비평사,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