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의 역사 -신화가 아닌 문헌사료에서 나타나는 고조선과 단군신화와 기자조선 분석-
- 최초 등록일
- 2023.01.09
- 최종 저작일
- 20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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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조선이 아닌 실제 역사서, 사료안에서의 고조선은 어떤 모습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교과서안의 고조선이 아닌 살아있는 역사로서의 고조선. 고조선의 실제 모습. 고조선은 과연 어디에 존재했고 누가 통치했으며 어떻게 존재했고 어떻게 살아갔는가. 우리가 아는 단군신화는 건국신화인가? 기자조선은 실재했는가?
목차
1. 고조선의 중심지 논쟁
가. 재요령성설
나. 재평양설
다. 중심지 이동설
2. 고조선의 등장과 성장
가. 기원전 8세기
나. 기원전 4~3세기
3. 위만조선
4. 단군신화에 대해
5. 기자조선의 허구성
본문내용
1. 고조선의 중심지는 어디인가?
고조선사는 문헌자료가 매우 부족하기에 그 사회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아야 그 시대의 내용을 복원할 수 있다. 그렇기에 고조선이라는 국가의 성격을 알기 위해서 고조선의 중심지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기에 그 연구가 선행되었다. 이런 연구는 고고학적 증거를 중요하게 여기며 문헌자료를 그를 보충하는 방식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가) 재요령성설
요령성 일대에 중심지가 계속 존재했다는 주장으로 신채호와 북한의 리지린이 주장했고 1993년까지의 북한학계의 주된 학설이었다. 비파형 동검과 순장 무덤의 분포를 중요 근거로 드는데, 초기 청동기 시대의 특징적 유물인 비파형 동검은 한반도 내부에서도 나오지만, 만주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다수의 순장 무덤이 발견된다. 이러한 무덤들은 강력한 정치권력자를 의미하는데 이 시기에는 고조선 이외에는 찾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또한 『산해경』에 등장하는 강의 흐름을 근거로 요수가 북경 근처의 난하, 고조선의 국경이었던 패수를 대릉하, 열수를 요하로 보고 조선 후기 수도인 왕검성은 요하 동쪽의 개평이라 주장한다.
참고 자료
송호정, 「고조선은 어디에 있었나」 우리 시대의 한국고대사 1, 주류성,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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