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의 생애, 내가 조광조였다면?
- 최초 등록일
- 2011.07.09
- 최종 저작일
- 2011.03
- 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조광조의 생애와 내가 조광조였다면이라 생각하며 저술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가. 서론
나. 본론
나-1 정암의 생애
나-2 내가 정암이었다면
다. 결론
본문내용
가. 서론
정암 조광조(趙光祖, 1482~1519). 조선시대 최대의 개혁가, 혹은 정치가. 이번 레포트를 쓰기 위해 정암에 대해 찾아보면서 나는 정암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다.
‘짧지만 어느 누구보다 굵은, 조선 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대한 인물’
중종 10년 8월, 34세가 되던 해에 정암은 과거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중종 14년 11월, 38세에 기묘사화로 희생되었다. 겨우 만 4년 정도의 시간동안 정치를 했을 뿐이었다. 나이도 너무나 젊고 관직에서의 경력도 다른 이들에 비하면 한참이나 짧았다. 하지만 그가 남긴 발자국은 거대하였다.
그는 한국 유학사상에서 도학을 확립시킨 지대한 공로가 있다. 정암은 세조와 연산군을 거치면서 점점 퇴색되었던 유교 이념을 다시금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결국 그는 정치판에 몸을 담았던 4년 동안 당시의 조선 왕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인정받았으며, 16세기 이후의 조선 왕조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인물이 되었다.
나. 본론
나-1 정암의 생애
정암 조광조는 1482년(성종 13) 한성부에서 한양 조씨 조원강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충신효자공신청백리를 두루 갖춘 국초의 명문 가문이었다. 조선의 개국공신이었던 정암의 고조부 조온, 의영고의 의영고사였던 정암의 증조부 조육, 성균관의 사예를 지낸 조부 조충손. 그리고 그의 아버지인 조원강 또한 사헌부의 감찰을 지낸 인물이었다. 이런 조상들의 혈육과 정신을 타고났으며 유학 도통연원의 정통인 한훤당에게 수학함으로써 정암은 점점 자신의 빛을 닦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암의 어린 시절에 대해 소개하는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이중 눈에 띄는 사실은 정암이 17살이던 때인 1498년(연산군 4)에 사림파의 핵심 인물이던 김광필에게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2년 뒤인 19세에 아버지인 조원강이 명을 달리했다. 부친상을 당해 교육이 중단되었으며 3년상을 치른 뒤에 정암이 김광필에게 교육을 또 받았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짧은 기간동안의 교육은 정암이 성장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이후 정암이 보여준 생활 태도나 학문 경향을 비롯해 정치적 지향까지 김광필에게서 이어받은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1. 63인의 역사학자가 쓴 한국사 인물 열전 I (한영우 저, 돌베개)
2. 한국인물유학사 I (조준하 외 7인, 한길사)
3. 조선중기척신정치연구 (김우기, 집문당)
4. 조광조 (정두희, 아카넷)
5. 조선 전기 사림파의 현실 인식과 대응 (이병휴, 일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