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
- 최초 등록일
- 2011.06.14
- 최종 저작일
- 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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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사레 베카리아. 그에 대해서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 이영근 교수님께 일단 감사와 존경의 표시를 드린다.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베카리아란 인물은 단지 범죄와 형벌을 저술한 위대한 이탈리아의 형법학자일 뿐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을 읽고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이분은 학자로서의 입장에서 저술하셨던 것이고, 난 일개 법학을 전문적으로 전공하지 않은 비법대생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여기에서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저자 자신의 지적, 사회적 배경을 우선적으로 이해해야 하며, 당시의 억압적 환경에서 저자의 내심을 그대로 드러낼 수 없던 사정에서 숨겨놓은 뜻을 발견해내기 위해서는 행간을 읽어내는 지혜도 아울러 요구되고 있다.
베카리아는 1738년 3월 15일 밀라노의 미미한 귀족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그 성격의 중요한 단면들을 보여주었다. 그는 변덕스러운 기질로 인해 무언가에 얼마간 열중하다가도 이내 사그라들곤 했다. 대인관계에 있어서는 신중하고 과묵한 편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이나 가족에 대해서는 중요시하고 관심을 가졌다. 8세가 되자 파르마에 있는 예수회 학교에 보내졌는데, 후에 베카리아는 그곳에서 받은 교육에 대해 광신적이고 인간 감정의 발달을 질식시키는 것으로 기술했다. 그는 학창시절 수학에 자질을 드러냈지만, 이후에 곧 나타날 탁월한 지적 성취에 대한 어떤 기미는 거의 없었다. 1758년 파비아대학교에서 법학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760년 16세의 테레사 블라스코에게 청혼했으나 아버지의 완고한 반대에 직면하자 다음해에 부모의 승낙없이 결혼식을 치르고 가난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결국 이들 부자는 화해했고, 베카리아는 아내와 함께 고향집으로 들어갔다. 1762년 첫딸이 태어났고, 이후 2명이 더 태어났다. 베카리아는 정식교육을 마치고 밀라노로 돌아오자마자 18세기 계몽주의 사조에 자극받아 심취하게 되었다. 그는 피에트로 베리 백작과 함께 문인단체의 조직을 도왔고 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762년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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