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하의 영화
- 최초 등록일
- 2011.04.21
- 최종 저작일
- 2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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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영화유입 및 조선영화의 시작(1903~1919)
2.연쇄극 시기(1919~1922)
3.무성영화 전기 (1923~1926)
1)조선총독부의 영화검열
4.무성 영화의 정착(1925~1934)
5.발성 영화 시대 (1935~1945년)
6. 일제의 시장지배 및 영화정책
목차
1.영화유입 및 조선영화의 시작(1903~1919)
2.연쇄극 시기(1919~1922)
3.무성영화 전기 (1923~1926)
1)조선총독부의 영화검열
4.무성 영화의 정착(1925~1934)
5.발성 영화 시대 (1935~1945년)
6. 일제의 시장지배 및 영화정책
본문내용
●일제하의 한국영화
1.영화유입 및 조선영화의 시작(1903~1919)
과거 일제 강점기를 겪은 사람들은 지금도 가끔 영화를 활동사진이라 부르는데 활동사진이란 말그대로 움직이는 사진이라는 뜻인데, 당시 조선인들의 영화에 대한 경외심을 부분적으로 반영한말이라 볼 수 있다.
조선에 영화가 처음 들어온 정확한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기록이 있는데, 1897년 10월 10일 런던타임즈 19일자 보도기사에 따르면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심훈이 우리나라에 처음 활동사진이 들여와 일반에게 공개 했다고 하는데 출처가 불확실하다. 이에 대해 정리를 하자면 조선에서 처음으로 활동사진이 상연된 것을 명확하게 입증할 수 있는 기록은 황성신문 1903년 6월 23일자이다. 이 신문에는 최초로 영화상영 광고문이 게재되었는데, “동대문 전기회사 기계실에서 상영하는 활동사진은 일요일과 흐리거나 비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상영하는데 입장료는 동화 10전”이라는 내용이 실려있다. 그러나 이 이전에 이미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자료들과 서구 열강들과 일본의 조선 진출시기 등을 고려해볼 때 1903년 이전에 들어온 외국 교육, 종교계 인사들에 의해 영화가 비공식적 경로에서 상영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1910년이 조선에 대한 일본의 본격적인 탄압이 시작된 해였다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 해는 한국 영화역사에서 흥행이 본격화된 해라고 말할수 있다.
1910년대 말에 이르면서 우리나라도 영화제작의 꿈이 실현되는 중요한 전기를 맞게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