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형무소 답사보고서
- 최초 등록일
- 2010.12.15
- 최종 저작일
-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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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말그대로 답사보고서입니다. A받은 겁니다. 뿔은 못받았네요. 시험땜에 ㅋㅋ
목차
Ⅰ. 머리말
-답사지 선정
Ⅱ. 서대문형무소
1. 개관
2. 답사
3. 소감
Ⅲ.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나는 내 자신을 민족주의자라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국사를 공부하고 싶게 된 계기도 고3때 3.1운동 부분을 공부할 때였다. 별다른 생각 없이 교과서를 읽어 나가다가 문득 같이 실린 사진을 보았는데, 태극기를 휘두르며 행진하는 군중과 그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일본 헌병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내가 있었다면, 나도 저랬을까’, ‘죽음이 눈앞에 있는데 내가 그토록 당당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 때부터 국사에 대한 소명을 가지게 되었고, 내 머릿속에 대한민국에 대한 정체성이 확립되었다고 생각한다.
항일에 관련된 유적의 답사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가장먼저 떠오른 곳이 바로 서대문형무소였다. 지난 2월에 일본에서 답사를 온 친구들과 함께 오랜 시간을 머무르며 둘러봤던 곳이었고, 그 시간동안 많은 것을 느꼈으며, 다시 찾고 싶은 곳이라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유관순열사가 갇혔었다는 지하 여자감옥부터 옥사와 각종 고문실을 거쳐 사형장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생생한 역사의 현장들이었다. 바로 우리의 몇 대 위의 조상들. 그들이 느꼈을 고통과 절망, 처절함이 피부로 절절히 느껴지는 곳이었다. 때문에 서대문형무소를 다시 한 번 찾게 되었고 이번에는 사진으로 지난번의 현장들을 담아 왔다.
Ⅱ. 서대문형무소
1. 개관 개관은 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1988년 2월 27일 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었는데 부지 19만 8348㎡. 연건축면적 2만 6446㎡. 수감 가능인원 3,200명(1987년 경기 의왕시로 이전 당시). 1907년 시텐노가즈마[四天王數馬]의 설계로 착공, 다음 해 문을 연 후 80년 동안 약 35만 명을 수감, 숱한 민족의 수난사를 잉태하였다.
건축물은 군집형태로 묶여져 있고, 이 중 붉은 담벼락·감시탑·출입문·구치감·감방(남사·여사·외국인사)·사형장·일반사무실(보안과·순화교육대)·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