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의 지방군사제도
- 최초 등록일
- 2010.11.18
- 최종 저작일
- 2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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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전기의 지방군사제도에 대해 기술하였습니다.
목차
1. 조선 초기의 지방 군사제도
2. 군령․군정기관의 정비
3. 군비의 확충
본문내용
1. 조선 초기의 지방 군사제도
(1) 진관체제(鎭管體制)의 성립
세조 원년(1455)에 전국의 각 도를 몇 개의 군익도로 나누고 각 군익도는 중․좌․우의 3익으로 구분하였다. 이 때 각 익의 지휘관은 수령이 겸대하고, 모든 군사는 익에 속하며 각 익에서 관할하고 군적은 중익과 도절제사․병조에 비치한다. 군령계통은 도절제사→중익절제사→제익의 계통을 이룬다. 결국 이것은 군익도의 지위를 뚜렷하게 하는 조치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지방군제의 개편은 전국의 모든 지역을 군사조직에 포함하여 군사지대화 하는데 성공했으며 전국의 지방 군사조직이 비로소 일원화되어 남방의 여러 지역과 북방의 요해처를 동일체계 속에 포함시키게 된 것이다.
군익도 체제는 세조 3년에 진관체제로 바뀌게 되었다. 즉 중․좌․우익의 편성을 갖던 종래의 체제는 주요한 지역을 거진으로 하여 나머지 주변지역의 제진이 그 휘하에 소속되도록 한 것이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도 대신 진이란 명칭이 나타나는 점이다. 이것은 행정구역상의 도와 혼동되는 복잡성을 피한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종래 지방군사상의 요해지였던 진의 계열과 연결시켜서 요새지 군사기지로서의 거점적 성격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거진을 중심으로 제진이 이에 속하도록 한 것은 제진 각자에게 독자성을 부여하고 일원적 군사체제를 더욱 분명히 한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지휘계통에 있어서도 거진을 따로 떼 내어 다른 제진과의 상하관계를 분명히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때의 개혁은 종래 지역의 특수성에 따라 존치되었던 독진제를 지양하고 전 지역을 망라하는 진관체제로 변개되었음을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