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축의 역사 3장
- 최초 등록일
- 2010.06.11
- 최종 저작일
- 2010.03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한국건축의 역사 3장
목차
제 3장(7세기중반∼8세기 신라와 발해왕국)
고대건축의 새로운 전개
1. 중앙집권 관료제도 속의 도시와 주택 정비
2. 국제화되어 가는 건축
3. 석조물에 나타난 신라의 고유한 조형미
4. 불교건축의 새로운 경향
5. 발해의 건축
본문내용
제 3장(7세기중반∼8세기 신라와 발해왕국)
고대건축의 새로운 전개
1. 중앙집권 관료제도 속의 도시와 주택 정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정립은 660년 백제가 망하고 668년에는 고구려가 명말하면서 반도 남쪽은 신라의 영토가 되고 고구려가 다스리던 압록강 북쪽 일대는 고구려 유민에 의해 건국된 발해 왕국 땅이 되었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은 왕권 강화에 치중하였고 이후 신문왕을 거처 경덕왕 때까지 약 1세기 동안 통치체제의 중앙집권화가 지속되었다. 이 1백 년 동안 도성 경주는 인구가 증가하고 모든 문물이 모이는 등 크게 번성을 누렸다. 통일 전에 왕궁은 월성에 있었는데 통일 후 월성에서 북쪽으로 시내를 관통하는 대로를 건설하고 북쪽 끝에 새로 궁궐을 조성했다고 추정된다. 흔히 성동리 유적이라고 부르는 대규모 건물 유적이 바로 이 때 새로 조성된 궁궐터로 추정된다. 지금 경주 시내에 있는 안압지는 바로 문무왕 때 조성한 연못으로 알려져 있다. 연못은 발굴조사에 의해 그 전모가 드러났는데, 장대한 규모에 인공미와 자연미를 한껏 내세운 화려한 못과 이를 감상할 수 있는 정자나 전각들이 주변에 있었음이 밝혀졌다.
안압지는 인공미와 자연미가 조화를 이루고 여기에 중국의 문학 취미가 반영된 신라 조원술의 최고봉을 자랑하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월정교는 전체 길이가 70m에 달하고 그 사이를 네 개의 교각이 상판을 지지하던 대형 교량이다.
이밖에 경주의 도시 행정을 주관하는 전읍서와 장인들을 통솔 관리하는 관서인 공장부가 있다.
전읍서에는 건축기술자로 추측되는 목척 70명이 속해 있었는데 이들은 경주 시내의 관청이나 귀족들의 주택 건설을 책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전사서란 국가의 제사를 주관하는 관청으로 알려진 곳이다.
참고 자료
한국건축의 역사 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