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장
- 최초 등록일
- 2010.05.24
- 최종 저작일
- 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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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선교장에 대한 설명
목차
1. 선교장의 전경
2. 선교장의 위치
3. 선교장의 역사
1) 역사적 배경
2) 선교장의 전설
4. 선교장의 특징
1) 조선시대의 상류주택인 선교장
2) 선교장 각 건물들의 조경적 특징
①. 평대문, 솟을대문
②. 사당
③. 활래정(외별당)
④. 행랑채
⑤. 사랑채(열화당)
⑥.별당채
⑦. 선교장의 별서 ‘방해정’
본문내용
3. 선교장의 역사
1) 역사적 배경 : 효령대군의 11대손인 가선대부 무경 이내번에 의해 처음 지어졌으며 10대에 이르도록 증축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예전엔 경포호수를 가로질러 배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 다녔다 하여 선교장이라 명명되었다. 선교장은 안채와 별서를 경영한 조선시대 상류층의 대표적인 주거공간으로, 1756년 입향조 이무경(1693~1781)이 매입하여 정착한 후 1960년대 보수에 이르기까지 약 240여 년간 9대의 선교장주가 교체되면서 조영이 이루어져 왔다. 특히 3대 이후에는 기존 건물을 개수하거나 보수, 신축하여 현재 선교장을 대표하는 열화당, 활래정의 모습을 완성하였다.
2) 선교장의 전설 : 효령대군의 11대손인 무경 이내번이 경포대 근처의 저동에 살던 때였다. 가산이 일기 시작하여, 좀 더 너른 터를 찾던 어느 날,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일이 집 앞에 일어났다. 족제비 몇 마리가 나타나더니 나중에 떼를 이루어 서서히 서북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무경이 뒤를 좇았다. 그러다 서북쪽으로 약 1km 떨어진 어느 야산의 울창한 송림앞에 멈췄는데, 그 많던 족제비의 무리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신기하게 생각하여 한동안 망연히 서 있던 그는 정신을 가다듬어 주위를 살폈다. 그러고는 이곳이야말로 하늘이 내린 명당이라고 무릎을 쳤다. 시루봉에서 뻗어 내린 높지 않은 산줄기가 평온하게 둘러져 있고, 왼쪽으로는 약동 굴신하는 생룡(生龍)의 형상으로 재화가 증식할 만하고, 약진하려는 듯한 호(虎)가 오른쪽으로 내려 자손의 번식을 보이는 산형이었다. 과연 이곳에 터를 잡고 나서 이씨가는 날로 번창했다. 이씨가에선 하늘이 족제비를 통해 훌륭한 터를 내리신 것이라고 믿었고, 최근까지 뒷산에 족제비의 먹이를 가져다 놓는 풍습이 전해졌다. -<강릉 선교장(열화당)> 中-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