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유교의 전개와 성격
- 최초 등록일
- 2010.05.15
- 최종 저작일
- 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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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의 유학
1. 유교와 왕건의 창업
2. 창업파의 유교사상
3. 광종의 유학 진흥정책
Ⅲ. 고려 유학의 형성기
1. 최승로의 ‘시무28조’
2. 성종의 유교 정치
3. 최충과 ‘사학십이도’
Ⅳ. 고려 유학의 흥성기
1. 관학의 진흥
2. 경전에 대한 존중과 강론 위주의 학풍
3. 활발한 저술 활동과 역사의식의 발달
Ⅵ. 고려유학의 쇠퇴기와 주자성리학의 수용
Ⅶ.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일반적으로 고려시대를 말하면 불교를 숭상하고 풍수도참설이 유행하던 시대를 떠올린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성리학, 특히 주자학이 전래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유학이 사회 정치적으로 별다른 구실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어느 정도 구실을 했을 것이라고 인정하는 경우에도 유학의 조류가 학술문화의 아류로 기능하는데 그쳤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성리학만을 유학으로 신봉하는 편파적인 입장과 당나라 말기나 송나라 초기에 유행하던 문예경시사상, 그리고 고려 유학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그대로 받아들인 데서 오는 잘못이다.
고려시대에는 유학이 정치 이념으로 채택되어 불교와 더불어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따라서 유학은 정치의 사상체계로 성립되고, 전 시기에 비해 학문적으로도 크게 성장했다. 고려에서 신앙생활을 지도한 것은 주로 불교였던 데 비해 정치이념을 제공하고 도덕과 윤리의 기반이 된 사상은 유교였던 것이다. 고려 때에는 도교와 지리도참사상 등도 유행하였지만 크게 보면 당시의 사상계는 유(儒)·불(佛)이 병립하는 형세를 이루고 있어서 불교는 말할 것도 없고 유교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컸다.
Ⅱ.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의 유학
1. 유교와 왕건의 창업
신라 말엽의 유학에서는 우선 원시 유학의 근본 사상인 인·의·효·제·충·신을 기본 덕목으로 하여 유학자의 자질을 갖추기 위한 인격 도야에 힘쓴 다음, 한나라 때부터 내려오던 오경 강독을 전공과목으로 다루었다. 그리하여 일단 유학자로 일컬어지면, 그는 도덕·문장·사리·법도 등 유학의 기본적인 소양을 갖춘 사람으로 인정되었다. 따라서 실제로 국가의 일을 관장하던 사람은 불승이나 도사가 아니라 유학자였으며, 이들은 새로운 국가가 세워지면 국가의 조직과 정치 행정의 규율을 확립하고 시행하는 주역이 되었다.
고려의 태조 왕건(王建 877~943)의 고려 건국은 사실상 유교의 천명사상과 역성혁명사상, 왕도주의에 기반하여 이루어졌다.
참고 자료
강만길 외, 『한국사6』, 한길사, 1976
김충열,『한국유학사1』, 예문서원, 1998
김충렬,『고려유학사』, 고려대학교 출판부, 1984
박용운,『고려시대사』, 일지사, 2008
사전-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