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학 <요한시집> 감상문
- 최초 등록일
- 2010.04.28
- 최종 저작일
- 2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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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장용학 <요한시집>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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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장용학의 <요한시집>을 읽고 한동안 아무생각도 할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항상 소설은 가볍게 읽어왔던 터라 이 소설도 편한 마음으로 읽으리라 생각했지만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것이 무슨 내용인지,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쉽게 알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토끼의 이야기, 전쟁, 누에, 누에의 어머니 그리고 죽음이 이 소설에 어지러히 널려 쉽게 정리할 수 없었다. 사실 이 리포트를 쓰는 지금도 내가 이 소설의 감상문을 제대로 쓸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생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알 수 없었던 것은 토끼의 우화가 왜 맨 처음에 나왔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굴밖을 뛰쳐나갔던 토끼 즉 동굴 속에
그는 위험한 사상에 손을 댄 대가로 눈이 멀었고,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다가 그 사상에 제대로 손을 대어보지도 못한 채 죽어버린 토끼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그 토끼는 동호이고, 누혜이고, 그 당시의 모든 사람들 같다.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과 위치가 빚어 내는 시간"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빈터"가 "결국은 `나`를 두 개의 나로 쪼개 버린 실마리였는지도 모른다"고 동호는 말하고 있지만, 동호는 두 개가 훨씬 넘는다. 그는 "동호는 나인가? 나는 나인가?"하고 자꾸 물을 수밖에 없다. 그는 그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는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 그의 일부인 동호가 동호를 부르면 또 다른 동호가 대답하고, 어떤 때는 아예 대답할 동호가 없기도 하다.
그렇게 천갈래 만갈래인 동호가 있는 곳은 그의 어지러운 머릿속이고, 환상과 환영 속이다. 그나마 그는 죽지 않고 살아 있기에 그렇게라도 할 수 있다. 이렇게, 저렇게 되어볼 세상을 그려보면서 안 될 건 무언가 억지를 부려보기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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