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답사(창덕궁, 북촌 한옥 마을)
- 최초 등록일
- 2010.03.19
- 최종 저작일
- 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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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창덕궁과 북촌 한옥마을 답사 기행문
목차
창덕궁 & 북촌 한옥마을
느낀 점
본문내용
금천교
금천교는 1411년에 축조된 돌다리이다. 조선의 궁궐에는 공통적으로 초입부에 풍수지리상 길한 명당수를 흐르게 하고 그 위에 돌다리를 놓았다. 특히 창덕궁의 돌다리는 그 아래 비단같이 맑은 물이 흐른다 하여 비단에 네 천자를 사용하는 금천교이다.
다리 아래에는 남쪽의 해태상, 북쪽에 거북상을 배치하여 궁궐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삼았다. 다리 중간에는 잡귀를 쫓는 귀면이 조각되어 벽사의 의미를 더하고 있다.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돌다리로서 아름다운 난간석과 견고하고 정중한 축조 기술이 돋보인다.
인정전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들 국가의 중요행사가 행해진 궁궐의 대표적 공간이다. 이러한 행사 때에는 인정전 앞의 품계석에 맞춰 동쪽에는 문관이, 서쪽에는 무관이 중앙을 향해 도열했다. 조선의 궁궐 정전에는 공통적으로 정면에 임금의 용상과 나무로 만든 곡병을 두고 뒤에는 일월오약병을 둘렸는데 일월오약도에는 해와 달, 다섯 개의 산봉우리, 폭포, 파도, 소나무가 그려져 있다. 천장에는 봉황 한 쌍이 새겨져 있다. 1908년 전기시설이 가설되면서 인정전에 전등이 설치되었다.
대조전
대청마루를 가운데 두고 왕비의 침전인 서온돌과 동온돌로 나뉘어진다. 이 건물은 용마루가 없는데 이는 용으로 비유되는 임금이 잠자는 곳에 또 다른 용을 나타내는 용마루가 있으면 두 용이 충돌한다 하여 설치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1917년 이 건물이 불에 타자 1920년 경복궁의 교태전을 옮겨다 지었다. 마지막 임금인 순종이 이 곳에서 승하하였다.
경훈각은 대조전의 부속 건물로 원래는 이층 건물이었으나 1917년 화재 이후 경복궁의 만경전을 헐어 단층으로 옮겨 지었다. 수라간은 음식을 만들던 곳으로 내부는 조선 말 서양식으로 개조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