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답사기
- 최초 등록일
- 2009.12.08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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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종묘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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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종묘로 가는 담길을 따라 걸으며 마치 옛 임금님과 교감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숙연한 기분과 엄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정문 앞에 도착했을 때는 그에 대한 존경의 마음까지 갖게 되었다. 종묘의 명당이 갖는 힘인지, 조선의 역대 왕들이 내뿜는 힘인지 모를 그 어떤 것에 종묘에 대한 들뜬 마음이 나도 모르게 점잖게 가다듬어졌던 것 같다. 종묘는 도심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도심을 떠나있는 또 다른 세계이다.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유교사당으로서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중국의 우나라에서 처음 시작된 종묘제도는 은 ․주 시대에는 7대조까지 묘에 봉안하는 7묘제가 시행되다가 명나라 때에는 9묘제로 확대되었는데 중국의 태묘에서는 태실이 9실에 불과하나 한국의 종묘만은 태실이 19칸인 매우 독특한 제도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 종묘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392년에 보이며, 신라에서는 5묘제, 고려에서는 7묘제로 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7묘 제도를 따르다가 중기 이후부터는 치적이 많은 왕은 7대가 지나도 정전에 그대로 모셨으며, 그 밖의 신주는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영녕전으로 옮겨 모셨는데, 이를 조천 이라고 하였다. 종묘의 정전에는 19실에 19위의 왕과 30위의 왕후 신주를 모셨으며, 영녕전에는 정전에서 조천된 15위의 왕과 17위의 왕후 및 의민황태자의 신주를 모셨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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