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학의 해제
- 최초 등록일
- 2009.09.15
- 최종 저작일
- 20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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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박제가의 북학의의 시대 배경과 그 자세한 내용을 나타낸 논문 형식의 레포트입니다!
북학의의 내용을 알고 싶으시다면 추천합니다!
목차
Ⅰ. 序-動機
Ⅱ. 朴齊家의 生涯와 思想
1. 生涯
2. 思想
Ⅲ.『北學議』
1. 編纂할 當時 國內의 與件
2.『北學議』의 構成
Ⅳ.『北學議』의 內容, 意義, 批判
1. 內容
2. 意義
3. 批判
Ⅴ.結
본문내용
Ⅰ.序-動機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한 때는 수험생활이 막 끝날 무렵이었다. 우리 옛 고전을 찾던 중 『북학의』가 눈에 띄었다. 국사시간에 처음 들어본, 『북학의』라는 책을 알고 싶어서였다. 그 때 읽었던 『북학의』는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사회여건에 대해 통렬히 비판하면서 우리보다 더 나은 제도나 물건을 가지고 있던 중국의 것을 수용 또는 참고하자는 내용의 글이었다. 이런 강력한 주장을 견지한 글을 나는 현대의 글이 아닌 옛 문헌에서는 처음 봤었다. 요즘도 이런 비판적인 문체를 가진 글을 보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마당에 지극히 보수적(保守的)인 조선 사회에서 감히 비판조의 글을 쓴 것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그 당시 시대적 정황은 중국(여기서 중국은 명(明)나라를 가리킨다)을 사대(事大)하는 분위기가 팽배한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초정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아무리 명나라를 섬기더라도 우리의 실리는 챙겨야 한다고 본 것이다. 즉, 지금 중국을 지배하고 있는 청나라가 비록 오랑캐이더라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제도 및 풍습이 옳은 것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여기서 진정한 배움의 자세를 조금이나마 느꼈다. 불치하문(不恥下問)의 뜻을 여기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북학의』가 중요한 사상서이자 고전(古典)으로 꼽히는 이유일 것이다.
이제부터 북학의의 저자인 위항도인과 북학의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Ⅱ.朴齊家의 生涯와 思想
1. 生涯
박제가는 영조26년 11월 5일 우부승지 박평의 서자(庶子)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11세 때 아버지를 여위고 어머니의 삯바느질로 생계를 유지할 정도로 가난한 생활을 하였다. 19세 때 이덕무의 소개로 박지원의 문하에 들어가 실학을 연구하였으며, 이덕무․유득공․이서구 등 실학자들과 친교를 맺고 이들 세 사람이 합작하여 영조52년(1776) 시집 《건연집》을 내어 청나라에까지 소개되어 극찬을 받았으며, 우리나라 시문사대가 중 한 사람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778년(정조2년) 사은사 채제공을 수행하여 청나라에 가서 이조원․반정균 등으로부터 새 학문을 배우고 돌아와 실사구시의 사상을 토대로 『북학의』 내외 편을 저술하였다. 1779년(30세 때) 3월 정조에 의해 규장각(奎章閣) 검서관으로 발탁되어 처음 관직에 나아가게 되었는데 이 때 그는 청나라의 고증학학파의 문헌을 대량으로 수입하여 출판하였으며, 이 때부터 정조의 신임과 총애를 받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