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의 삶과 문학
- 최초 등록일
- 2009.04.28
- 최종 저작일
-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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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녀 황진이는 다재다능한 여자였다. 그녀의 많은 재능 중에서도 한시에 대해서
목차
1. 황진이의 삶
1.1. 시대적 배경
1.2. 황진이의 생애
2. 기녀시조의 특징
2.1. 형식상의 특징
2.2. 내용상의 특징
3. 황진이의 시세계
3.1. 대상적 자아로서의 인식
3.2. 자아의 의사성
4.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1. 황진이의 삶
1.1.시대적 배경
조선의 사회는 가부장 제도를 기반으로 한 사회였다. 가부장 제도란 남성에 의한 여성 지배를 의미한다. 한국의 가부장 제도는 적어도 초기 국가 형태를 띠었던 삼국시대 또는 그 이전부터 발견된다. 조선조 가부장 제도는 우선 그 사회가 집약 농업적 생산양식을 가졌다는 경제적 특성과 국가적 체계를 발전시켰다는 정치적 특성에 그 요인을 가지고 있다.
유교적 지배의 차원에서 유교는 현세적 실용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동시에 사회 유지의 원리로서 선사시대에 수입되어 그 이후부터 중앙통치에 활용되었다. 조선 중기에 들어와서는 양반의 지배가 지방의 구석구석까지 미치게 되고 사회적 배경에는 왕권을 둘러싼 내부 갈등과 낙향 관료들의 이익 유지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조선조 전기 사회에서 주자학에 의한 구질서의 개혁과 새로운 사회질서의 수립을 시도한 이래로 유교적 덕목에 의한 남녀구별 즉 내외법이 보급되기 시작 하였으며, 경국대전(經國大典)이 편찬됨으로써 그 안에 가부장제가 법적으로 확실하게 되어 진다.
조선조의 여성들은 국가통치의 이념과 유교적 이데올로기와 혈통집단의 통제를 강하게 받게 된다. 조선 초기의 여성에게는 재산권도 있었고, 아들과 딸의 이름이 출생순서대로 기재되었으며 아들이 없어도 양자를 들이지 않았고, 외손봉사도 가능한 시대였다. 그러나 부권혈통의 경직화(梗直化)와 가문중시의 현상에서 여성의 삶의 통제는 강화되었고, 통제의 성격 역시 비인간적으로 흐르게 되어 열녀관, 재가금지, 출가외인이라는 여성규제들이 생겨났다.
이와 같은 시대에 기생의 삶은 억압과 동시에 기생으로서의 본분을 강요받아야 했다. 기생은 관비(官婢)의 신분으로 천민집단이었다. 조선조 때 기생은 모두 관비로서 관아에 매여 있었는데 사회적으로 미천한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이들 기녀들은 당시 양반 사대부와의 교류를 통하여 교양을 확대하였고, 교방(敎坊)을 통해서 정식으로 예악에 대하여 교육을 받기도 했기 때문에 양반 사대부들과 동반자적인 관계에서
참고 자료
김미란, 『한국 여류 한시의 세계』,여강출판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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