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교착과 휴전 과정
- 최초 등록일
- 2008.12.04
- 최종 저작일
- 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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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625전쟁의 중공군 공세가 끝난후 교착과 휴전과정을 요약하였습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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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중공군의 5차 공세 후 서로의 군사상황 판단은 회담의 기회를 자연스럽게 조성했다.
유엔군의 입장은 첫째로 북진을 유지할 경우 엄청난 시간과 인명피해 우려였다. 그 당시 예상 손실규모가 10만 명 이상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둘째로는 압록강까지 유엔군이 진출했을 경우 그것은 전쟁의 종결이 아닌 중국과의 전쟁으로 번질 위험우려 셋째, 중국내륙으로 진출해 완전 승리를 추구 할 경우 소련의 개입이 불러올 3차 세계대전으로의 확산, 끝으로는 미국의 국력 소모는 소련의 목적이며 그결과는 세력의 불균형을 불러올것이라 판단했다.중공군의 입장에서는 첫째 산악지대를 이용하는 방어가 가능할것, 둘째 전쟁 개입당시와 다른 소련의 원조 불충분 셋째 신생국가로 전쟁에 국력소모가 지나친것은 국가이익에 부적합할것 이란 판단이었다. 전쟁 발발 후 1년간의 격전 끝에 남한과 북한은 38도선 부근에서 접촉선을 두고 대치하였다. 1년간의 전쟁으로 결론적으로 양쪽 모두가 전쟁으로는 서로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인식하에 협상으로 해결하려는 정치적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휴전협상은 51년 7월 26일 ‘무엇을 논의할 것인가’하는 의제에 합의를 보고 본격적으로 토의한다. 합의된 5개의 의제중 군사분계선 설정의제를 놓고 협상에 들어갔다.
군사분계선 주장에서 유엔군측은 ‘휴전선은 정치적 해결선이 아닌 적대행위 중지선이기 때문’에 군사분계선은 현시점의 군사력균형을 보상하는 선이 되어야한다며 현 접촉선으로부터 30-40km 북쪽에 설치할것을 주장했다. 이것은 공산군측의 주장대로 38도선을 설정할 경우 방어의 불리함과 북한의 재도발 가능성을 고려한것이었다. 공산군은 이번전쟁이 무승부이기 때문에 군사분계선을 38도선으로 하며 남쪽으로 10km 의 비무장 지대 설치를 주장했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11월에 이르러서야 ‘현 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한다’에 합의가 이뤄졌다.
참고 자료
전쟁사/주시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