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교양] 동족 상잔의 비극, 6.25전쟁 과정
- 최초 등록일
- 2022.03.21
- 최종 저작일
- 20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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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족 상잔의 비극, 6.25전쟁 과정"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서 론
2. 본 론
가. 북한의 남침 준비과정
나. 전쟁 발발과 전개과정
다. 전쟁의 주요 전투
라. 전쟁의 결과
3. 결 론
본문내용
1. 서 론
매년 6월 25일이 되면 학교에서나 뉴스에서 이를 기리는 행사들을 많이 봐왔을 것이다. 같은 뿌리, 같은 민족끼리 이념의 대립으로 인한 분열이 전쟁이라는 큰 아픔으로 이어졌고 평화의 중요성을 동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을 통해서 알 수 있겠다. 전 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 대한민국은 언젠가는 ‘통일’이라는 과제를 달성해야 한다. 그렇기에 분단의 원인이 된 과거의 아픔을 되돌아보고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할 바이다.
2. 본 론
가. 북한의 남침 준비과정
(1) 소련의 남침 승인
남침 1년 6개월 전인 1949년 초부터 북한의 김일성이 이미 스탈린에게 남침 의사를 제기하고 있었으며, 아울러 소련도 군사고문단과는 별도로 약 4천여 명의 병력을 북한에 잔류시켜 전쟁준비를 지원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이에 관하여 먼저 1949년 3월 초 김일성-스탈린 회담 내용이 주목된다. 즉 김일성은 동년 3월 5일 김일성은 박헌영을 대동하고 경제지원, 군사력증강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스탈린을 방문하였다. 이 회담에서 경제협력과 무역, 기술지원, 문화교육 분야의 협력, 북한 아오지-소련 크라스키노 사이 철도건설, 군사력 건설 등의 협의를 가졌다. 특히 이때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남침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사실이다. 1949년 3월 김일성·스탈린 회담에서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경제부흥발전 계획지원을 위해 4,000만 달러의 차관, 기술지원, 전문가 파견 등을 합의하였으며, 이때의 차관은 상당 부분 인민군의 무기 및 장비수입에 사용되었다. 회담에서 김일성, 박헌영은 스탈린으로부터 남한의 군사력, 주한미군, 38도선 무력충돌 등에 관해 질문을 받았으며, 북한의 해군과 공군 지원, 북한군중 일부를 소련군사학교에 위탁하여 실시할 것 등을 약속받았다. 여기에서 합의된 구체적인 지원사항은 곧이어 3월 12일 개최된 김일성과 국방상 불가닌과의 회담에서 논의되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참고 자료
양영조. 북한의 6.25남침 준비과정과 소련,중공의 역할. 향방저널, 2002.06월호
국가기록원. 6.25 전쟁 발발. 네이버 지식백과
전쟁의 결과
두산백과. 6 ·25전쟁의 발생과 남북전력. 네이버 지식백과
동락리전투 [Battle of Dongrakri, 同樂里戰鬪].
상주 화령장전투 [Battle of Sangju Hwaryeongjang, 尚州化寧場戰鬪].
다부동전투 [多富洞戰鬪]
영천전투 [Battle of Yeongcheon, 永川戰鬪]
인천상륙작전 [仁川上陸作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한미상호방위조약 [韓美相互防衛條約].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