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히틀러가 왜 그런 정신세계를 가졌는지, 그가 세계정복을 나설 수 있을 만큼의 정치적 권력은 어떤 경위로 가지게 되었는지, 유태인에 대한 대량학살은 왜 일으켰는지’와 같은 히틀러에 대한 고찰함.
목차
1. 히틀러의 생애
2. 히틀러의 정치
3. 유태인 학살
4. 히틀러에 대한 평가
<참고 문헌>
본문내용
2.히틀러의 정치
‘우리의 투쟁에서 결말은 두가지밖에 없다.적들이 우리의 시체를 넘어가느냐,아니면 우리가 그들의 시체를 넘어가느냐이다.’라는 히틀러의 한 연설에서 그의 정치적 성격을 단적으로 볼 수 있다.히틀러가 2차세계대전을 일으켜 세계정복의 야망을 꿈꾸는 시기가 있기까지 그의 정치적 성장을 살펴보았다.
1918년 11월 7~8일 독일에서는 혁명이 발발하여 빌헬름 2세가 망명하고 사회민주당의 에베르트가 새 총리로 취임했으며, 11월 11일에 독일 대표는 휴전협정에 서명했다. 1919년 4월 13일부터 5월초까지 공산당이 주도하는 노동자·병사 위원회가 뮌헨과 그 주변지역을 지배했으나, 이 위원회는 반혁명군대에 의해 진압되었다. 이후 바이에른은 반혁명적 왕당파와 반동적 군부가 세력을 장악한 유일한 반동지역이 되었다. 히틀러는 군대에서 공산주의자를 색출하는 위원회에서 일하다가 보수적인 국방사상을 일반사병에게 교육시킬 인물을 양성하는 강습회에 참여했다. 1919년 6~8월 이 강습회에서 히틀러는 보수파의 우수한 학자와 정치가의 강의를 듣고, 토론과 연설 훈련을 받았는데, 이때 그는 상관에게 탁월한 연설재능을 인정받았으며, 정치·경제·역사 등 다방면의 강의를 들음으로써 자신의 지식을 넓힐 수 있었다.
1919년 9월 12일 히틀러는 뮌헨에 있는 독일노동당 집회에 참석했다. 독일노동당은 반유대주의에 기반을 둔 반혁명정당으로서 사회주의적 정책과 애국주의를 결합시킨 중간계급 위주의 정강을 채택하여 대자본과 귀족특권계급에 반대했다. 이 집회의 토론에 참여한 히틀러는 당간부인 드렉슬러의 주목을 끌었고, 며칠 뒤 "귀하의 입당을 허가함. 9월 16일에 열리는 독일노동당 위원회에 출석하기 바람"이라는 통지를 받았다. 히틀러는 심사숙고한 끝에 이 위원회에 출석하여 555라는 당원번호를 받았고, 제7당위원이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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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터 C. 랑거 지음,최종배 옮김,『히틀러의 정신분석』,솔, 1999년
요아힘 C. 페스트 지음,안인희 옮김,『히틀러 평전』,푸른 숲,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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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빈 알렉산더지음,함규진 옮김,『히틀러는 왜 세계 정복에 실패했는가』,홍익출판사,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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