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
- 최초 등록일
- 2008.11.22
- 최종 저작일
-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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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순자와 그의 사상에 대해서 정리한 것입니다.
목차
▶ 순자 철학의 가치
▶ 화려한 삶, 어두운 죽음
▶ 성악설
▶ 인간의 홀로서기
본문내용
순자는 공자와 맹자를 이어 유가 철학을 발전시킨 사람입니다. 순자가 언제 나서 언제 죽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대체로 기원전 298년 무렵에 나서 238년 무렵에 죽은 것으로 추정할 뿐입니다. 기원전 298년은 공자가 죽은 지 200년쯤 뒤이고, 맹자가 죽은 무렵입니다. 당시는 혼란이 극에 이른 전국 시대 말기였지만, 한편에서는 서서히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었습니다.
순자의 이름은 황(況)이고, 자는 경(卿)입니다. 순(筍)자가 손(孫)자와 발음이 비슷해서 손경이라고도 불렀는데, 경이란 벼슬한 사람에 대한 존칭이기도 했기 때문에 순자를 귀족 출신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중국 고대의 가장 믿음직한 역사서인 <사기>는 순자의 일생을 50세 무렵부터 적고 있습니다. 50세 이전에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습니다.
젊은 시절의 순자는 어디로 갔을까? 아마도 이 점은 순자에 대한 뒷 사람들의 평가가 별로 긍정적이지 못했던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순자는 공자나 맹자의 삶과 비교해 볼 때 살아 있을 당시 상당한 영광을 누린 사람이었습니다. 순자는 조나라에서 태어났으며 50세 무렵에 제나라로 갔습니다. 당시 제나라로 모여든 학자들을 직하 학파라고 했다는 것은 앞서 이야기했습니다. 수자는 직하에서 가장 덕망 있는 학자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래서 직하의 최고 사상가가 맡는 좨주 벼슬을 세 번이나 지낼 수 있었습니다. 좨주는 대부 정도에 해당하는 명예직에 지나지 않았지만, 국가의 큰 행사가 있을 때면 술을 부어 제사하는 일을 담당하는 벼슬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가장 덕망 있는 사람에게 맡겨지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순자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자신을 시기하는 사람들로부터 참소를 당한 순자는 제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갑니다. 진나라는 당시 최강대국이었으며, 부국 강병을 주장하는 법가 사상을 통치 이념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