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인 맹호연(孟 浩 然)에 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8.08.03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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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어중문학(인문학) - 중국시인 맹호연에 관한 모든것.
목차
1. 맹호연의생애
2. 맹호연의 작품 특색
3. 맹호연의 대표작품들 ( 해석과 감상 )
4. 당시 시풍에 대한 영향
본문내용
1.생애
성당 자연파 시인으로서, 호연은 그의 자인데 이름보다도 널리 알려져 있다.
호북성 양양 사람으로서 이미 나이 10세 때 학문에 뜻을 두고 30세의 나이가 되도록 양양의 남원에 은거하여 학문에 정진하였다.
그는 문장에 대한 자부심이 무척 강하여 30세 이후 낙양에 상당 기간 머물면서 그 당시 저명한 시인들, 예컨대 저광희, 포융, 기무잠 등과 어울리기도 했다. 그러나 뜻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병이 들어 귀향하였고, 이 기간에 객지를 유랑하기도 했다.
다이 그는 태학에서 시를 지은 적이 있는데, 좌중이 모두 그의 재주에 탄복했다고 한다.
그는 불혹의 나이에 진사과에 응시하러 또다시 장안에 갔으나, 그 이듬해(729)에 본 시험에서 보기 좋게 낙방하고 말았다. 그러나 장안에 머물면서 장구령, 왕유 등 조정의 문인들과 깊은 교문을 맺으면서 자신의 시재를 발휘하였으나, 현종의 노여움을 사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다. 결국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음을 깨달은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잠시 머무르다 또다시 방랑의 길을 떠났다.
그로부터 6년 후인 735년에 벼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나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다 절호의 기회마저 놓치고 말았다. 2년 후에 장구령 밑에서 하찮은 직책을 맡기도 했지만 일 년도 채 못되어 귀향하였고, 왕창령과 더불어 술을 마시다가 병에 걸려 죽었다.
그는 벼슬에 뜻을 두었으면서도 방랑과 은둔으로 생애를 마감한 불우한 이물이지만 현존하는 263수의 시에는 전원과 산수를 노래한 것이 많다.
2. 작품특색
맹호연은 왕유와 함께 성당기 산수전원시파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맹호연시의 서정기조는 유가적 이상의 결렬에서 기인하는 실의지감이다. 따라서 그의 시에 묘사된 자연경물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많은 경우 작가의 실의지감이 기탁되어 있다. 이로 인하여 산수전원시에 대하여 작자의 주관적 정감이 완벽하게 탈략되기를 요구하는 일부 연구자들은 맹호연시의 문학적 성취에 대하여 회의적 태도를 보여왔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