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문학] 맹호연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3.05.18
- 최종 저작일
-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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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맹호연 작가 소개
맹호연의 작품 세계
맹호연의 작품
본문내용
맹호연은 무후(武后)영창(永昌)원년(689)에 태어나 현종(玄宗)개원(開元)28년(740)에 52세의 일기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삶의 시기는 무후(측천무후라고 하며 당나라 3대 고종의 황후로써 스스로 황제라 칭하며 약 15년 간 중국을 지배한 중국 사상 유일한 여제)의 실각 이후 중종과 예종의 과도기를 거쳐 사가(史家)들에 의하여 ‘개원성세(開元盛世)’라고 칭송되는 현종의 통치기간 정도로 볼 수 있다. 중국 당나라 시인으로써 이름은 호(浩)이고 자는 호연이다. 지금의 호북성(湖北省-중국 양쯔강 중류에 위치) 상양에서 태어났다. 맹호연의 가계와 조상에 대하여도 역시 그의 시를 통해 모호한 수준의 이해가 가능할 뿐이며, 다른 경로를 통해서는 거의 알 수 없는 형편이다. 그의 인품에 대해서는 왕사원의 평가에서 살짝 엿 볼 수 있다. ‘풍골과 용모가 맑고 준수하고, 풍신이 산랑하며 장심이 홀로 기묘하여 오언시는 천하 최고였다.’라고 말한다 그의 여러 문인들과의 교류에서 보면 그는 사교성도 대단히 좋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36, 7세 이전에 맹호연은 주로 고향에서 독서와 은거로 생활하였다. <구당서>에 ‘녹문산에 은거하여 시로써 스스로를 즐겼다.’는 기록은 바로 이시기에 해당된다.
그는 은일 시인이었다. 그는 관직의 길과는 약간 멀게 느껴지는 사람이다. 그의 나이 40세 전후쯤에 장안으로 가서 진사시에 응했지만, 그는 진사시의 실패로 커다란 타격을 입게된다. 벼슬에 나아가 임금을 보필하고 백성을 계도하겠다는 이상을 펼 수 잇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으니, 당연히 정치적 좌절과 실의에 가득 차게 되었으며, 그는 이 문제로 하여금 출사의 문제에 대하여 심각한 회의하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적극적인 입세로부터 소극적 은일의 길을 모색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