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 Haya de la Torre case 입니다.
- 최초 등록일
- 2008.07.21
- 최종 저작일
- 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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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제법 토레(TORRE)케이스 입니다.
목차
1. Torre에 관한 사전 지식
2. 사실관계
3. 배경 지식 : 외교공관의 범죄인비호권/망명
4. 외교적 망명에 대한 다른 태도
가. 라틴아메리카의 외교적 망명제도
나. 보편적인 국제 질서에서의 외교적 망명
5. 재판의 문제와 판결
가. 콜롬비아가 망명을 부여할 목적으로 ‘정치적 범죄인가 보통 범죄인가’를 심사할 자격이 있는가?
나. Torre의 출국에 페루가 필요한 보장을 해야하는가?
다. Torre가 페루 당국에게 반드시 인도되어야 하는가?
6. Haya de la Torre 사건의 결말
7. ICJ의 판결 후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움직임
8. 쟁점정리
ICJ의 의견
본문내용
1. Torre에 관한 사전 지식
아야 데 라 토레(Victor Raul Haya de la Torre,1895-1979)
페루 정치가로서 학생시절 마르크스 주의에 심취하면서 노동자 조직의 지도적 활동을 하게 된다. 이후 여러 나라를 망명하다가 1924년 멕시코에서 노동자와 지식인의 반제국통일전선조직인 아프라당(APRA) ALIANZA POPULAR REVOLUCIONARIA AMERICANA ; 무산대중의 생활 향상을 위한 경제, 사회개혁과 외국인 기업의 국유화를 주창함
을 창설하였으며,1925년에 모스크바로 건너가 코민테른과 접촉하였으나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점에 실망하였고, 1927년 공산당과 결별하게 된다. 1931년에는 정권탈취를 목적으로 본국에 돌아와 대중운동을 전개하지만, 아프라당의 급진적 개혁주의는 군대를 배경으로 하는 지배계급의 탄압을 받아 아야는 지하생활과 형무소생활을 되풀이 하였다. 특히 1948년 카야오에서 봉기한 뒤 콜롬비아 대사관으로 망명하였으나, 국제사법재판소의 결정과 국제여론 고조에도 불구하고 페루 독재정권에 의해서 5년동안 국외도피가 허용되지 않는다. 1962년 대통령 선거에서 최고득표를 획득하였으나 군부의 반대로 무효가 되었다. 이듬해 재선에서 참패하였지만, 아프라당이 의회의 대다수를 차지하였고, 1978년 입법의회 의장을 역임하였다.
2. 사실관계
1948년 10월 3일 페루에서 반란이 실패로 끝난 후 반란주도자 중의 한 사람인 Haya de la Torre에게 반란으로 야기된 형사상의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 그는 3개월동안 숨어있다가 1949년 1월 3일 Lima에 있는 페루주재 콜롬비아대사관에서 외교적 비호 비호권(庇護權) : 정치적 망명이나 피란을 요청해오는 외국인을 보호하는 국제법상의 권리
를 요청하였다. 콜롬비아당국은 Torre를 정치적 난민으로 규정하여 비호을 허용하도록 하였고, 또 페루당국에 페루 출국을 위한 안도권을 요구하자, 페루가 이에 반발하여 거부하였다. 이에 콜롬비아 당국은 페루정부를 상대로 이 사건을 제소하여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김대순,『국제법론』, 삼영사, 1996
정인섭,『국제법의 이해』, 홍문사, 1996
전순신,『국제사법재판소(Ⅰ)』, 세종출판사, 1999
김정건,『국제법-신판』, 박영사,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