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전국 시대의 사회변혁
- 최초 등록일
- 2008.07.02
- 최종 저작일
-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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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 전국 시대의 사회변혁을 요약한 파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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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서주 중기 이래 왕실의 세력은 급속히 쇠미해진다. 이에 여왕은 왕실의 약체화를 막기 위해 새로운 경제정책과 호구조사를 실시한다. 그러나 이것은 제후들의 저항을 받게 되고 국인들은 여왕을 내쫓기에 이른다. 그래서 여왕은 체로 망명하게 되고 공위시대가 출현한다. 이때가 B.C. 841년인데 이를 공화원년이라 부른다. 이는 중국 역사상 연대가 분명한 최초의 해이다. 여왕이 죽은 후 선왕이 즉위하게 되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선왕의 뒤를 이어서는 유왕이 등장한다. 그러나 견융의 난이 일어나게 되고 이를 피해 수도였던 낙읍으로 옮기게 되면서 서주는 멸망한다.
이리하여 서주의 창업부터 평왕이 천도할 때 까지를 서주라고하고 진이 전국을 통일할 때 까지를 동주라고 한다. 동주시대를 다시 둘로 나누어 전반기를 춘추시대 후반기를 전국시대라고 부른다. 춘추는 B.C. 722년부터 B.C. 481년까지의 기록밖에 없지만 일반적으로 춘추시대는 그보다 약 반 세기 정도 소급해 주의 동천까지이다. 그리고 전국시대는 한 위 조가 진을 삼등분한 B.C. 453년 혹은 주 왕실이 이를 공인한 B.C. 403년부터 잡는 것이 일반적이다.
춘추시대에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낸 나라는 정이었다. 이때 패자가 등장하는데 춘추 증기부터 방대한 영토와 인구 및 강대한 무력을 지닌 강국이 등장해 쇠미해진 동주 왕실 대신 국제정치의 주도권을 장악한다. 일반적으로는 제 환공, 진 문공, 초 장왕, 오왕 합려, 월왕 구천을 꼽는다. B.C. 7세기경에 시행된 제후들의 모임인 회맹은 존왕양이 왕을 높이고 오랑캐를 규탄한다는 것과 계절존망의 내용이 있는 것이었다. B.C. 658년이 되면 초가 정에 침입하여 춘추시대 남북대립의 장을 연다. 이후 춘추 중기를 전후해 각국 간의 겸병전이 치열해지고 그 결과 약소국이 대거 멸망하게 된다. 세력을 잡은 강대국들은 소국을 멸망시킨 후 현이라는 지방행정 단위를 설치해 직접 지배하는 새로운 지배방식으로 전환하는데 이는 식민지와 같은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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