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전자 감옥에 살고 있다 - 《파놉티콘》을 읽고
- 최초 등록일
- 2008.06.07
- 최종 저작일
-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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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파놉티콘-정보사회 정보감옥 (홍성욱 저)을 읽고 쓴 독후감입니다.
책에 대한 내용보다는 사회 전반에 대한 상황을 많이 대입해서 써봤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일본 만화 《데스 노트(Death Note)》를 보면, 이름을 적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노트가 등장한다. 이 노트를 가진 주인공은 새로운 세계의 신이 된다는 스스로의 목표를 세우고 전 세계의 범죄자를 심판한다. 법이 미처 처벌하지 못한 범죄자조차 데스 노트에 이름이 기재되어 죽임을 당하자 대중들 사이에는 전지전능한 ‘누군가’가 세상을 심판한다는 인식이 확산된다. 사람들은 범죄자가 제거되는 상황을 반갑게 받아들였으나, 반대로 자신이 심판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으로 인해 점차 규율을 내면화하여 본인을 스스로 감시하게 된다.
마치 파놉티콘과 같다. 간수와 죄수 사이에는 현격한 ‘정보력의 차이’가 존재한다. 파놉티콘의 간수가 자신이 어디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전혀 공개가 되지 않듯이 주인공의 정체 역시 누구도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감시자와 피감시자의 정보력이 동등하다면 권력의 차이는 이처럼 크게 발생하지 않는다. 파놉티콘의 중앙이 공개된 영역이라면 더 이상 간수는 절대적인 통제력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의 스테이트빌 교도소가 그 예다.
재미있는 점은 주인공의 범죄자에 대한 정보력은 대개 매스미디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TV나 신문, 인터넷을 통해 벌어지고 있는 범죄와 사건을 봄으로써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 이는 현대의 전자감시와 같은 맥락이다. 물론 국가기관은 개개인을 감시할 때 이보다 더 치밀한 방법을 사용하겠지만, 이미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범위 내에서도 충분한 감시가 가능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사실 파놉티콘은 죄수의 교화를 목적으로 설계된 원형 감옥이지만, 설계자인 제레미 벤담은 사실상 공장이나 학교, 병원과 군대가 구조적으로 감옥과 같다는 점을 통해 유기적으로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선의 비대칭을 통해 일인(혹은 소수)이 다수를 감시하는 스펙트럼의 구조를 만들어낸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견해는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유효하게 작용한다.
처음에 벤담이 파놉티콘을 얘기하던 시대에 비해 오늘날을 시대는 많은 기술적 진보를 경험했다.
참고 자료
1 한국일보, 2005. 11. 22. 주민등록번호제·정통부·삼성SDI 사생활침해 빅브라더賞
1 경향신문, 2006. 3. 8. [인터넷이 中國을 바꾼다]사이버단속 실태
1 한겨레, 2008. 6. 6. ‘보이지 않는 손’ 인터넷 여론 은밀히 ‘재갈’
1 프레시안, 2008. 6. 5. “야, 이게 나라냐?” [촛불의 소리] 권위, 신뢰, 존경 모두 잃어버린 이명박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