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중제국의 민족문제
목차
Ⅰ. 머리말
Ⅱ.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성립배경
Ⅲ. 이중제국의 국가체제
Ⅳ. 이중제국의 민족문제
Ⅴ. 이중 제국의 역사적 의의와 문제점
Ⅵ. 맺음말
*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머리말
1840년대에 빈의 한 급진적인 인물이 “민족들의 감옥”이라 부른 오스트리아 제국에는 독일인, 마자르인, 이탈리아인, 체코인, 루마니아인, 폴란드인, 슬로바키아인,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유대인 등이 섞여 살았다. 한편 합스부르크가 사람들은 13세기말에 빈과 오스트리아 땅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나 그들은 1500년대 초에 가서야 비로소 왕가끼리의 통혼을 통해 보헤미아 왕국과 헝가리-크로아티아 왕국을 획득함으로써 다민족 국가의 토대를 닦았다.
동제국은 유럽의 심장부에 위치했으므로 유럽대륙에서 대격변이 일어날 때마다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1620년과 1720년 사이에 제국은 강대국의 반열에 올랐고 반혁명의 선봉에 서서, 개혁적인 신앙이 빠르게 뿌리를 내린 보헤미아의 신교도를 억눌렀다. 그리고 제국은 그리스도교 세계의 동쪽 전초기지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이슬람교도인 터키인의 진격을 저지했다. 하지만 1866년, 오스트리아군이 쾨니히그레츠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에게 패배한 이후, 합스부르크가는 독일연방에서 더 이상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목적으로 1867년에는 헝가리와 절충한 끝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을 탄생시켰고, 이때부터 합스부르크가의 대외정책은 중앙 유럽에서 정치적 ․ 인종적 갈등과 긴장이 팽팽하게 고조된 지역인 발칸반도로 초점이 옮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생한 긴장과 갈등은 결국 유럽 대륙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이라는 참화로 몰아가는 원인이 되었다. Timelife books/김훈 역,『제국의 종말 :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서울, 가람기획, 2005), 14쪽.
제국내의 여러 민족은 모두 자기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제국이라는 거대한 세계와 싸우며, 거기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과정 속에서 자신들만의 민족적 특색을 잘 보존하고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역사상에서 남아 내려온 각종 문제와 민족 간 실질상의 불평등과 차별로 정치 ․ 경제 ․ 교육 등에서 심각한 문제 또한 남아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참고 자료
김장수,「19세기 이후 제시된 오스트리아제국의 존속방안 - 구오스트리아주의와 친오스트리아슬라브주의를 중심으로」『독일연구』12(서울, 한국독일사학회, 2006. 12).
민석홍,『서양사개론』(서울, 삼영사, 2004).
박재영,「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연합체제 연구 : Zisleithanien과 Transleithanien의 민족문제를 중심으로」(서울, 동국대 대학원, 1998).
박재영,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Austro-Hungarian Dual Empire)의 국가체제와 민족문제」『경주사학』24․25(경주, 경주사학회, 2007).
Henry Kissenger, Diplomacy(New York, 1994).
Timelife books/김훈 역,『제국의 종말 :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서울, 가람기획,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