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운동 - 테니스
- 최초 등록일
- 2008.03.22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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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테니스의 역사, 한국의테니스사, 테니스의 예절, 경기규칙, 테니스코트의종류, 자세, 주요국제대회
목차
▶테니스의 역사◀
▶한국의 테니스사◀
▶테니스의 예절◀
▶경기규칙◀
▶테니스 코트의 종류◀
▶자세 점검◀
▶주요 국제대회◀
본문내용
▶테니스의 역사◀
⇒ 테니스 경기의 원류를 추적하기란 쉬운 작업이 아니다. 구구한 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와 페르시아에서 이와 비슷한 경기를 했으며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즐겼다는 것으로 보아 이미 11세기 경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주로 왕후 귀족과 사원의 승려들에 의해서 행해지고 있던 볼 게임의 일종으로 손바닥으로 공을 치는 라 뽐므(La Paum)란 게임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것이 정설이며 이 경기의 발생시부터 오늘날까지 일관된 경기 방식은 볼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볼을 치는 경기라는 것이다. 또한 12세기초부터 16세기까지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했던 이 경기는 12세기 프랑스 수도원에서 고안되었다고 하며 쥬 드 폼므(Jew de Paume)(구희(球戱)관)이라고 불렀다.
폼므란 프랑스어로 손바닥을 말하며 이것이 13세기 경 프랑스 귀족과 성직자들 사이에서 쥬 드 폼므라는 손바닥 게임으로 발전했다. 쥬 드 폼므는 털이나 천을 채워 둥글게 만든 공을 맨손이나 장갑을 끼고 손바닥으로 때리던 경기로써, 코트의 중앙에 만든 경계 벽을 넘어서 반대쪽 3방향의 벽 어디에든지 손바닥으로 공을 쳐 넣으면 상대방은 이 공을 직접 또는 한 번 바운드 된 공을 손바닥으로 다시 쳐서 넘기는 경기였다.
이러한 쥬 드 폼므 경기가 테니스라고 불리게 된 것은 볼을 치라고 하는 테네(tennez)라고 하는 발음에서 1360년경 영국인들이 자기 나라에 테니스라고 하는 명칭으로 조어하여 소개할 때부터라고 한다. 이 경기는 왕후귀족과 승려들이 가장 애호한 스포츠 중 하나이며 중세 유럽에서는 중요한 경기 중 하나였다. 쥬 드 폼므는 수도원의 정원을 모방하여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코트의 구조와 복잡한 룰, 그리고 볼을 만드는 사람을 왕후귀족이 고용한 것 등을 볼 때 이 게임은 왕후귀족의 전유물로 삼았던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14세기 경에는 신흥 세력인 도시 귀족들도 쥬 드 폼므 경기에 열중하기 시작하여 각 도시에도 많은 구희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