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의 친일활동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7.12.17
- 최종 저작일
- 2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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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의 친일활동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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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한 미당 서정주 시인을 두고 언론이 저마다 민족 최고의 시인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는 또다른 역사왜곡이다. 안타깝게도, 그가 일제말기에 다쓰시로 시즈오로 창씨개명을 하고 황국신민화 정책의 선전에 앞장섰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또한 조선 청년들에게 일본을 위한 전쟁에 나가서 싸우다 죽을 것을 권하고 일본 군대를 쫓아다니며 종군기사를 썼던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는 1942년 친일 어용 문학지 <국민문학>과 <국민시가>의 편집 일을 맡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친일작품을 양산했다. 그가 쓴 친일작품은 평론 1편, 시 4편, 단편소설 1편, 수필 3편, 르포 1편 등 10편에 이른다. 그는 조선독립을 위해 힘쓰는 동족을 `불령선인`으로 매도하고 또한 조선청년들에게 일본을 위한 전쟁에 나가서 싸우라고 독려했다. 뒤에 그는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못 가도 몇 백년은 갈 줄 알았다"라고 말했는데, 기회주의자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인가.
해방이 되자 미당은 친일파들이 그랬듯이 우익쪽을 선택해 국내에 정치적인 배경세력이 없었던 이승만을 적극 지원하는 활동을 폈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 이후 불의한 현실에 싸우기 위해 활동했던 `민중문학`의 기세에 맛서기 위해 1986년 <문학정신>을 만들어 사상논쟁을 일으키면서 우익세력을 대변하였다. 지난 1981년에는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 대통령 후보를 위한 텔레비젼 지원 연설을 하였다. 또 `6월 항쟁`이 있었던 1987년 그가 회장으로 있던 한국문인협회에서는 `4.13 호언조치`를 구국의 결단이라고 지지하는 성명을 내 국민의 민주화의 열망에 찬물을 끼얻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반민족 행위자에 대해 역사의 이름으로 단죄하지 않고 오히려 칭송하고 본받게 하여 역사를 바로잡지 못했다. 언제까지 이 그릇된 역사를 반복해야 하는가.
미당 서정주는 한국 최대 최고의 시인이다. 시인 고은(高銀)이 아직 미당의 시 그늘에 푹 파묻혀 있을 때 그를 가리켜서 말한 `그는 또 하나의 정부(政府)`라는 수식어가 크게 과장된 말이 아닐 정도로, 미당의 시인된 이력과 그의 작품은 이미 하나의 `고전`이자 살아 있는 `문학사`가 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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