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전쟁론
- 최초 등록일
- 2007.11.28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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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의병전쟁의 발단
◎ 의병사상의 원류
․ 위정척사사상
․ 동학농민전쟁
3. 의병전쟁의 시작
4. 의병전쟁의 발전
5. 전면적인 민족전쟁으로 발전
6. 의병전쟁의 한계
7.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한국 근대 민족운동은 그 서두에서 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받아 그에 대한 독립운동으로 전개되었는데, 일제 침략에 대한 민족 항쟁은 동학농민전쟁과 의병전쟁으로 비롯되었다. 구한말의 의병은 일본에 대항하여 한국의 주권을 지키고자 봉기한 민병이었다. 민병이라고 해도 관군을 지원하는 등의 단순한 민병이 아니라 민병이나 관군의 위치를 초월한 민족의 군대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구한말의 의병항쟁을 의병전쟁이라고 하는 것도 민족의 군대로서 항쟁했다는 데에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전쟁은 원래 국가간의 무력충돌을 말하고, 전쟁 의사를 결정할 당국의 대내적인 결정 절차에 의한 충돌이어야 국제법상 전쟁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 당시의 대한제국은 국민이나 민족의 의사를 대변할 처지가 아니었다. 1904년 한일의정서가 체결되면서 정부가 아닌 민족 그 자체로서 민족의 의사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민족운동의 주류를 형성했던 의병운동은 민족의 양심과 의지를 대변하면서 민족의지를 표현한 성격의 호칭인 의병전쟁이라고 불릴 수 있다. 구한말 민족운동에서 계몽운동도 구국운동의 일환으로 이뤄지기는 했으나, 의병전쟁과 비교했을 때, 근대 지향적이기는 해도 구국이념의 성격이 모호했거나 소극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의병전쟁을 민족운동의 주류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구한말 의병전쟁의 시기는 연구자에 따라서 2시기, 3시기, 4시기, 5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2시기는 전기와 후기로 구분한 것으로써, 전기는 1896년 해산한 유림중심의 斥邪義兵을 가리키고, 후기의병은 을사조약을 전후하여 봉기한 救國義兵을 일컫는다. 이 방법은 주체적 성격을 기준하여 구분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3시기 분류는 의병 봉기의 동기를 중시하여 을미, 을사, 정미의병으로 구분한 것과, 최근 설득력을 가지고 확산되는 전기, 중기, 후기의 구분법이 있는데, 후자는 연도가 고정되지 않으면서 전체를 성격에 따라 구분한 장점이 있다. 또 4시기 분류는 3시기 구분의 후자에서 후기의병을 1909년 9․10월의 일제의 소위 남한대토벌작전을 기준으로 다시 분기한 방법이다. 남한대토벌작전을 전후하여 의병이 해외로 가서 독립군으로 전환해간 시기를 전환기의병이라 하였다. 5시기 구분은 앞의 4시기 구분의 1915년까지를 전환기의병이라 하고 잔여의병이 3․1운동까지 집으로 돌아가지도, 해외로 망명하지도 못한 채, 즉 독립군으로 전환하지 않고 국내에서 의병 방식으로 항전하던 사실에 주목하여 후기의병 시기를 설정한 경우다. 이 글에서는 대체로 3시기 구분에 맞추어 내용을 펼쳐 나가도록 하겠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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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편집위원회, 『한국사 12』, 한길사, 1994
조동걸, 『한국근현대사의 이해와 논리』, 지식산업사,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