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혜원 신윤복의 풍속화
- 최초 등록일
- 2007.10.21
- 최종 저작일
- 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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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혜원 신윤복의 생애와 작품을 리서치하고 작품을 풀이해 보았다.
목차
1. 풍속화란 ?
2. 조선시대 대표적인 풍속화가
3. 신윤복의 생애
4. 신윤복의 작품세계
5. 참고문헌
본문내용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1758 ~ ?]
1. 풍속화란 ?
[서민의 생활을 그리기 시작한 풍속화]
우리나라 사람들의 그림은 사람들의 일상과는 거리가 먼 것이 많았다. 주로 자연을 멀리서 바라보고 사람이 커다란 자연속의 일부로 자리하고 있는 그림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17세기 이후 실용적인 것을 중시한 실학이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그림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처음에는 양반가문의 선비들이 서민들이 일하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고, 차츰 화원이라 불리던 당시의 화가들이 풍속화를 그렸다. 자화상으로 유명한 윤두서도 풍속화를 많이 그렸고 김홍도, 신윤복, 김득신 등은 많은 풍속화를 남긴 당시의 유명한 화원들이다.
2. 조선시대 대표적인 풍속화가
신윤복은 김홍도와 비슷한 시기에 풍속화를 그렸던 화가이지만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은 다른 점이 많았다. 김홍도는 주로 서민들의 생활을 주제로 하여 1~2가지의 단색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신윤복은 여인들을 주인공으로 한 양반 사대부들의 생활 모습을 그렸는데, 다양한 색깔을 사용하여 화려한 그림을 그렸다. 또한 김홍도의 그림은 배경이 없고 사람들의 표정과 모습에 중점을 두어 그렸지만, 신윤복의 그림은 사람들의 모습과 주변의 배경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김득신은 김홍도의 화풍을 이어받아 생동감 있는 그림을 그렸다.
3. 신윤복의 생애
본관 고령(高靈). 자 입부(笠父). 호 혜원(蕙園). 김홍도(金弘道) ·김득신(金得臣)과 더불어 조선 3대 풍속화가로 지칭된다. 그는 풍속화뿐 아니라 남종화풍(南宗畵風)의 산수(山水)와 영모(翎毛) 등에도 뛰어났다. 속화(俗畵)를 즐겨 그려 도화서(圖畵署)에서 쫓겨난 것으로 전해지며, 그의 부친 신한평(申漢枰)과 조부는 화원이었으나 그가 화원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전해진 작품에 남긴 간기(干紀)로 해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처네를 쓴 여인》에 있는 1829년이 가장 하한인 바 대체로 19세기 초에 활동한 것으로 짐작된다.
참고 자료
한국 미술의 역사 / 김원용, 안휘준 / 시공사
한국 미술 이야기 / 박용숙 / 예경
함께 배우는 우리 미술 / 전성수 외 / 예경
청소년을 위한 한국 미술사 / 박차지현 / 두리 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