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사동 선사 유적지 명소화 방안
- 최초 등록일
- 2006.12.11
- 최종 저작일
- 2006.01
- 2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암사동 선사 유적지 명소화 방안에 관한 레포트 입니다.
명소 마케팅 수업과 레져기획론 수업에 관한 레포트 입니다.
목차
1. 여건분석
2. 시장분석
3. swot 분석
4. 사례분석
5. 컨셉 설정
6. 마케팅 믹스
7. 사업 추진 전략
본문내용
3. 암사동 선사 유적지 자원 현황
3-1. 강동구 선사문화 의 역사 지리적 환경
한강(漢江)은 압록강(鴨綠江)·두만강(豆滿江)·낙동강(洛東江)·대동강(大同江)·금강(錦江)과 더불어 그 길이에 있어 우리나라 6대 하천의 하나이지만, 그 유역면적(流域面積)에 있어서는 으뜸으로 꼽히는 강이다. 더구나 한강은 그 지류인 남한강(南漢江)과 낙동강이 소백산맥(小白山脈)을 사이에 두고 약 40㎞의 연수육로(連水陸路)로 연결된다는 점에 비추어, 이 강은 한반도(韓半島) 종관수송로(縱貫輸送路)의 중심축의 구실을 다하여 왔던 것이다. 이 사실은 겨레와 나라의 역사 전개의 시·공간적(視·空間的) 장(場) 가운데서 자리매김 되는 한강의 지정학적(地政學的)·전략적(戰略的) 위상을 새삼 눈여겨보게 만드는 대목이 된다.
그러므로 한강 유역일대의 역사와 문화가 유사(有史) 이래 오늘날까지 우리민족사 전개의 굽이굽이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남다름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또 이 점은 오늘날 고고학계(考古學界)와 역사학계의 노력에 힘입어 속속 확인되고 있다.그러므로 이 한강 유역 일대에서는 선사시대 주민들이 남긴 문화의 발자취가 곳곳에서 발굴(發掘)·조사·보고되어지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3-3. 암사동 선사유적지의 역사적 의미
암사동 유적의 층위(層位) 구성은 제일 밑바닥이 수형주거지가 있는 밝은 갈색의 모래층이고, 그 위 두 번째 지층이 두께 30㎝ 쯤 되는 불모층(不毛層)이며, 세 번째 층이 즐문토기편과 무문토기편(無文土器片)이 섞여 나오는 회흑색 모래층이고, 네 번째 층이 백제문화층이었고, 맨 위 다섯 번째 층이 모래층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표토층이었다.
레 져 기 획 론
이 사실은 이 암사동 유적지가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를 거쳐 백제 시대로 이어지는 이 땅의 역사 흐름과 그 궤를 같이하며, 당시 주민들의 취락(聚落) 입지로서의 구실을 다하였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신석기 시대 암사동에서 움집들을 짓고 살았던 주민들은 오늘의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 사람들일까? 이 문제는 곧 신석기 문화의 뿌리와 주민의 성격을 밝히려는 노력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종래 우리나라 신석기 문화의 원류(源流)에 관한 여러 논의가 있어 왔다. 먼저 시베리아 전래설은 우리의 신석기문화가 시베리아(Siberia) 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또 그곳의 신석기문화가 우랄(Ural) 지역을 매개로 멀리 북부유럽(Europe) 핀란드(Finland)의 ‘캄케라믹(kammkeramik)’과 우리의 즐문토기의 형태적 유사성에만 집착한 결과로서 비판받고 있다. 더구나 오늘날 우리 고고학계가 즐문토기에 선행하는 원저무문토기(圓低無文土器)와 융기문토기(隆起文土器)를 중심으로 하는 선즐문토기문화의 존재를 확인하게 됨에 따라, 그 입론의 근거를 잃었다. 오늘날 우리 학계는 즐문토기문화에 선행하는 선즐문토기문화의 존재에 주목, 그것과 유사한 그러나 중국 본토나 만주(滿洲) 지역의 신석기 문화와는 분별되는 토기문화가 우리나의 동북 해안지방 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및 흑룡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