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랑의 연보와 생애
- 최초 등록일
- 2006.11.27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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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영랑의 생애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목차
1. 작가연보
2. 김영랑의 생애
(1)시인의 고향 강진
(2) 휘문의숙 재학 시절
(3)동경 청산학원 중학부 유학 시절
(4) 문학 수업기
(5) 시문학파 활동기
(6) 문학적 저항과 침묵의 계절
(7) 사회 참여기
본문내용
2. 김영랑의 생애
(1)시인의 고향 강진
훗날 ‘1930년대 전반기 우리 시문학의 가장 큰 빛 서정주의 평: 김현, 1981, 193
’의 하나로 찬사를 받게 되는 시인 영랑 김윤식은 1903년 1월 16일 전남 강진군 강진면 남성리 탑골 마을의 북산 아래에서 태어났다. 영랑의 아버지 김종호는 500석 정도를 거두어들이는 상당한 규모의 지주로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강진 고을의 유지였다. 강진 고을 부농의 5남 3녀 중 맏아들로 태어난 영랑은 유년기에 동네친구들과 어울려 뒷산의 바위나, 집 주위의 감나무 밭이나 동백나무 숲을 놀이터로 삼아 성장하였다. 영랑은 1909년 봄부터 북산골에 있는 서당에 다니기 시작하였고, 그로부터 2년 후인 1911년에는 강진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15년에 졸업하였다. 그의 나이 열세 살 때인 1916년에 김은하와 결혼하였으나 다음해에 곧 사별하게 된다.
영랑의 생애와 문학에 있어서 그의 고향 강진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영랑은 그의 생애 중에서 7년 정도의 유학 기간과 말년의 2년간 서울 생활을 제외하면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고향 강진 땅에 살면서 주옥같은 서정시를 써낸 대표적인 ‘강진시파’ 시인이다.
강진 지방은 남도 특유의 고유문화를 독자적으로 꽃피운 지역으로 강진 고을의 자연과 삶은 영랑의 시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강진의 ‘이상적 남국 풍토’는 영랑의 시문학을 탄생시킨 모태에 해당되며, 「찬란한 슬픔의 봄」(1981)이라는 글에서 비평가 김현이 평한 바와 같이 전라도 사투리는 영랑의 시에 적절하게 수용됨으로써 우리 현대시의 중요한 자산으로 자리 잡게 된다. 「시와 감상」(1938)에서 정지용은 영랑의 시를 통하여 비로소 전라도 사투리가 매우 곡선적이고,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2) 휘문의숙 재학 시절
1916년 2월 초에 상경하여 1년 정도 기독청년회관에서 영어를 공부한 바 있는 영랑은 이듬해인 1917년 3월 휘문의숙에 진학하게 된다. 3학년 재학중이던 1919년 봄에 영랑은 3*1운동에 가담한 죄로 일본 경찰에 체포 구금되었다가 석방된다. 그리하여 고향으로 내려가지만 그곳에서도 독립 만세운동을 모의하다가 검거되어 대구형무소에 복역하다가 석방되는 등 많은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그해 가을에 결국 휘문의숙을 중퇴하기에 이른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