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사] 김영랑에 대해서
- 최초 등록일
- 2005.03.08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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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영랑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은분들!! 연보부터
작품세계에 대한 내용까지 모든자료 있습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김영랑의 생애
2.김영랑 연보
3.초기시
(1)4행시
(2)압운과 음성효과
(3)전라도 방언
(4)슬픔과 눈물의 정한으로의 세계
4.해방 후 시의 특징
Ⅲ. 결론
본문내용
Ⅱ. 본론
1.김영랑의 생애
전남 강진 출생, 휘문의숙을 거쳐 일본 청산학원 영문과 중퇴, 1930년 《시문학》지에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언덕에 바로 누워〉〈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등을 발표하여 시단에 등장, 이어서 〈모란이 피기까지는〉〈오매 단풍 들것네〉〈봄길 위에서〉〈내 마음을 아실이〉〈봄 달〉등을 발표하였다. 그의 시는 섬세하고, 청징한 정서가 독특한 시형 속에 담겨져 있으며, 현묘한 운율과 조탁된 시어가 조화되어 있어 순수서정시의 절정을 이룬다. 1930년대 정지용과 쌍벽을 이루면서 한국시의 한 봉우리를 이루었던 것이다. 저서로 《영랑시집》(1935)이 있다.
2.김영랑 연보
1903년: 1월 16일 (음력 1902년 12월 18일) 전남 강진군 강진읍 남성동 211번지에서 김종호(金鍾湖)의 장남으로 태어남. 본명은 김윤식(金允植).
1909년: 강진 보통학교 입학.
1915년: 강진 보통학교 졸업.
1916년: 16세의 김해(金海)김씨와 결혼. 모친의 도움으로 서울에 올라와 기독교 청년회관에서 영어를 공부함.
1917년: 휘문의숙 입학. 김영랑의 부인과 사별함.
1919년: 기미 독립 운동이 일어남. 강진에 돌아와 학생 운동을 모의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대구 형무소에서 복역함.
1920년: 일본에 건너가서 청산학원 중학부에 입학. 용아 박용철과 친교를 맺기 시작함.
1921년: 일시 귀국, 성악공부를 하려다가 부친의 완강한 만류로 포기.
1922년: 일본 청산학원 인문과에 진학, 영문학을 전공.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귀국.
1925년: 개성 호수돈 여고 출신의 김귀련과 재혼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살았음.
1930년: 박용철·정지용 등과 함께 《시문학》지를 간행. <동백닙에 빛나는 마음>등 30여 편을 발표.
1934년: 박용철이 주간한 《문학》지에 <모란이 피기까지는>과 <사행소곡>등의 시편을 발표.
1935년: 시문학사에서 첫시집 『영랑시집』을 박용철이 편집하여 간행했다.
1945년: 8·15해방이 되자 대한 독립 촉성회 단장을 역임.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
1949년: 공보처 출판국장
1950년: 6·25사변이 발발되어, 미처 피란을 못 간 영랑은 서울에 은신해 있다가 서울 수복을 앞둔 양군의 공방전에서 날아온 포탄의 파편에 복부상을 입고 9월 29일 작고했다.
참고 자료
정한숙, 『현대한국문학사』, 고려대학교 출판부, 1982
김학동, 『김영랑』, 문학세계사, 1993
김용직, 『한국현대시인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0
박철석, 『한국현대시인론』, 민지사,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