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서대문 형무소를 다녀와서
- 최초 등록일
- 2006.10.07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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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대문 형무소를 다녀와서 답사기 쓰는 과제였습니다.
A4용지 한장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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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서대문 형무소를 답사해오라는 과제를 받고 나는 내심 기뻤다. 성격이 게으른 탓에 한번도 만들어 보려고 하지 않았던 기회가 자연스레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겨우 한글을 읽을 수 있을 정도가 되자 나의 부모님은 유관순 위인전기를 사다 주셨다. 벌써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어찌나 이 위인전기를 열독 했었는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 까지도 가장 존경하는 위인을 꼽으라면 으레 유관순 여사가 제일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흔히 유관순 여사를 감옥에서 사라져간 이슬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감옥이 바로 서대문 형무소 였다.
수원에서 독립문까지는 약 1시간 40분이 걸리는데 출발하기 전부터 기분이 들떠있었다. 어린날 존경하던 위인의 삶의 일부를 공유한다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그곳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곳이었지만.
박물관은 독립문 근처에 1907년부터 대규모로 일제가 지었다. 광복전까지 이곳에서 많은 애국지사들이 투옥되어 지독한 고문을 받고 처형되거나 옥사 당했던 악명높은 곳이었다. 광복이후 서울교도소, 서울구치소로 바뀐 뒤 바뀐 이름만큼이나 많은 역사를 담은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개원하였다. 후에 이곳이 사적으로 지정된 후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으로 개관하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유관순 여사가 순국한 독방을 찾아보았다. 사방이 1m도 안되는 이 독감방에서 모진 고문과 영양실조 속에서 순국했다고 하니 마음이 다 아파왔다. 수많은 애국열사들의 이런 죽음이 독립의 어떤 촉진제 역할도 할 수 없었다고 생각하니 무력한 자국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민족주의가 지배계급의 정통성을 합리화 하고 강화하는 목적으로 쓰인다는 믿음을 갖고 있던 나 조차도 애국 순열들의 순수함과 열정 앞에서 가슴이 찡해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아침 저녘으로 독립만세를 외치고 모진 고문을 참아내던 여인의 순수한 열정을 마음 깊이 존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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