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래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06.09.29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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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부산의 역사 레포트입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해서 A 받은 자료입니다. ^^
목차
제1편 동래의 역사
제1장 선사시대 동래의 역사
제2장 삼한시대 동래의 역사
제3장 삼국시대 동래의 역사
제4장 통일신라시대 동래의 역사
제5장 고려시대 동래의 역사
제6장 조선시대 동래의 역사
제7장 대한제국기·일제시기 동래의 역사
제8장 해방 후 동래의 역사
제2편 동래의 문화재
제1장 유형문화재
제2장 무형문화재
<나의 생각>
본문내용
제1편 동래의 역사
제1장 선사시대 동래의 역사
선사시대 동래의 역사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구석기와 신석기시대는 동래의 유적에 관해 아직까지 알려진 것은 없다. 단지 부산 전체를 살펴본다면 해운대 좌동, 중동, 우2동의 청사포 등지에서 후기 구석기시대에 해당하는 유물과 유적이 발굴되었기 때문에 동래 지역에도 해운대 지역의 구석기 유적과 같은 조건을 가진 곳이 많기 때문에 구석기인의 생활터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은 많다. 지금의 수영천과 온천천 주변에 신석기 유적도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아직까지 발견된 것은 없다.
청동기 시대에는 동래와 주변지역에 많은 유적이 발견되었다. 노포동 주거지 유적은 지하철 노포동 차량기지 동남쪽의 야산에 있는데, 동쪽으로 수영강이 흐르고 있어 청동기시대 유적의 입지로서 좋은 곳이며, 여기서 민무늬 토기의 조각이 발견되었다. 또, 온천동 유적은 지금의 금강공원 내에 동남쪽으로 뻗어나온 구릉 지대에 위치하면서 온천천을 내려다보는 청동기 시대의 취락이 만들어지기 좋은 곳으로 민무늬토기가 꽤 출토되었다. 복천동 내성 주거지는 지금의 내성초등학교 뒤에 있는 동래교육청 자리에 위치하는 유적으로 직사각형 움집의 주거지와 화로 시설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부산지역에서 청동기 유적이 제대로 발견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청동기 주거지에 가야의 분묘 유적이 만들어지게 되어 대부분의 청동기 유적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청동기 시대가 되면 벼농사가 시작되는데 부산지역도 수영강변의 두구동, 노포동, 금사동, 거제동, 연산동 일대에서 벼농사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