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사]주몽설화와 고구려 건국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6.07.02
- 최종 저작일
- 20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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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대학교 한국사 시간에 작성한 자료입니다.
글자크기10 문단간격160이며 직접 작성한 알찬 자료입니다.
성적은 A+이며 정성을 들인 자료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목차
1.들어가며
2.주몽설화
(1) 삼국사기의 기록
(2) 삼국유사의 기록
(3) 이규보의 동명왕편의 기록
3. 주몽설화의 특징
4. 주몽의 개국과 치적
5. 주몽설화 관련기록
6. 고구려의 기원
(1) 지리적 환경
(2) 나(那)집단의 성장
(3) 현토군의 설치
(4) 고구려족의 저항
(5) 계루부의 대두
(6) 부체제(部體制)의 성립
본문내용
1.들어가며
최근 드라마 주몽열풍으로 인해 고구려의 역사와 그 시존인 주몽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본 레포트는 그러한 주몽설화를 통해 주몽의 옛 모습과 잊혀졌던 고구려 건국의 역사를 재조명해보기로 한다.
2.주몽설화
이름 주몽(朱蒙)■추모(鄒牟)■상해(象解)■도모(都慕) 동명성왕(東明聖王)이라고도 한다.
(1) 삼국사기의 기록
《삼국사기》에 의하면 동부여왕(東扶餘王) 해부루(解夫婁)가 죽고 금와(金蛙)가 즉위하였는데, 이때 금와왕은 태백산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를 만났다. 유화는 말하기를 천제의 아들 해모수(解慕漱)가 자기를 유인하여 사통(私通)하고는 돌아오지 않아 부모에게 쫓겨나 우발수에 살고 있다 하므로, 금와왕은 유화를 데려다 궁중에 유폐시켰다. 어느 날 유화는 햇빛을 받고 임신하여 알 하나를 낳았다. 금와왕은 이를 매우 불길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알을 돼지의 먹이로 주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돼지가 그것을 먹지 않자, 이번에는 그것을 길에 버렸습니다. 그러나 지나가는 우마 (牛馬) 조차도 이를 피해 지나갔습니다. 또한 들에 버리면 새와 짐승이 알을 감싸 주었으며, 깨뜨리려고 해도 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그 알을 낳은 어머니 유화 부인에게 돌려주게 되었습니다.유화부인은 그 알을 이불로 싸서 따뜻한 아랫목에 놓아 두었습니다. 그 알에서 남아(男兒)가 나와 성장하니 이가 곧 주몽이다. 주몽이 7세 때 이미 활을 잘 쏘는 등 영특하고 총명하자 금와왕의 장자 대소(帶素) 등 일곱 왕자 및 여러 신하들이 시기하여 죽이려 하였다. 이에 유화부인의 뜻을 따라 화를 피하여 졸본부여(卒本扶餘)로 남하, BC 37년 나라를 세워 국호를 고구려라 칭하고, 성(姓)을 고(高)라 하였다. BC 36년 비류국(沸流國) 의 왕 송양(松讓)의 항복을 받았고, BC 34년에는 성곽과 궁실을 건립하였으며, BC 33년 행인국(荇人國)을 정복하고, BC 28년 북옥저(北沃沮)를 멸망시켰다.
참고 자료
직접 작성 및 각종 참고자료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