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변화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06.06.18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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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문의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의 변화 역사를 통시적으로 고찰한 글입니다.
목차
1. 서론
2. 변화의 역사
2.1. 해방전
2.2. 해방후
2.2.1. 1945년 조국해방과 함께 다시 활기를 찾은 언론계
2.2.2. 해방후 가로짜기를 처음 실시한 지방신문, 호남신문
2.3. 60년대
2.4.70년대 이후
2.4.1. 일간종합신문에서의 가로짜기의 시도
2.4.2. CTS 제작과 스포츠 서울의 창간
2.4.3. 지면의 증면과 전격적인 가로짜기로의 전환
3. 변화의 의미
3.1. 가독성의 향상
3.2. 한국의 주체성의 확립
3.3. 학교 교육과 생활 교육의 일체화
4.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1985년 6월 22일, ‘박종환 감독 프로팀 간다’라는 타이틀을 단 스포츠서울이 윤전기를 타고 나오는 순간 한국 언론사의 한 페이지가 새로 기록되었다. 이 신문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이제껏 상상하지 못했던 가로짜기 신문이기 때문이었다. 서울신문이 86 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스포츠전문지 ‘스포츠서울’을 창간하면서 일부 신문에서 간헐적으로 선보였던 가로쓰기 형태를 대폭 확대, 전면에 걸쳐 가로쓰기를 시행하여 한국 신문 역사에 대 변혁을 이루었다.
독립신문(1897년)과 그 즈음에 나온 대부분의 국내신문은 일본신문을 따라 세로짜기 체제를 지니고 있었다. 세로짜기 체제가 100여년간 이어오는 중에 1947년 지방지 ‘호남신문’이 9년여 동안 가로짜기 형태를 시도한 바 있고 주간지로는 학생신문을 중심으로 가로짜기 체제의 신문이 출현하였지만 일간신문으로서는 스포츠서울이 첫 시도였다.
한국 언론사에 큰 전환점으로 볼 수 있는 가로짜기 신문이 출현하기까지의 역사를 살펴보고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Ⅱ. 변화의 역사
1. 해방 전 - 가로쓰기 제호의 시초는 독립신문
1897년 4월 7일 순수 민간신문으로 출범한 독립신문은 순 국문만을 사용하면서 본문은 세로쓰기를 채택했지만 제로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을 수 있도록 가로쓰기를 시행하였다. 그 이후 1898년 협성회보 등의 초기 기독교 신문을 비롯한 경성신문, 대한황성신문, 매일신문, 대한신보, 제국신문, 황성신문 등이 가로쓰기 제호를 사용하였고 대동신보, 대한매일신보도 1904년부터, 한성신문, 경남일보, 대한민보, 구세신문 등이 일제 강점 이전에 가로쓰기 제호를 사용하였다. 그 후 신문이 없는 암흑기를 거쳐 일제의 문화정책에 의해 창간되기 시작한 민간신문 중 동아일보가 뒤에 세로쓰기로 바꾸긴 했지만 창간호 제호를 가로쓰기 형태로 한 바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문이 출범당시에는 제호를 가로쓰기로 하였다가도 세로쓰기로 돌아갔다.
참고 자료
1) 최현배. {한글만 쓰기의 주장}. 정음문화사, 1999.
2) 김지용. [신문문화의 전환점], {신문과방송}. 제415호, 한국언론연구원, 2005.
3) 맹태균. [가로짜기편집 아직 이른가], {프레스}. 제11집, 한국편집기자회, 1987.
4) 오주환, 임상원. [신문의 한글전용이 독자의 독서행위에 미치는 영향], {신문학보}. No.4, 1971.
5) 이상우. [한글 가로짜기의 현황과 문제], {신문 가로짜기}. 한국언론연구원,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