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계열]“전태일” 를 읽고..
- 최초 등록일
- 2006.06.14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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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전태일” 를 읽고 서평을 작성한 내용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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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48년 8월 26일 대구에서 태어난 태일은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었다. 이미 유아기에 한국전쟁이라는 참혹한 역사를 겪었고 대구에서 부산으로 피난을 떠나는 부모의 등에 업혀 사람들 속에서 부대껴야 했다. 곤궁하고 피폐한 삶이 태일의 가족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었겠지 만, 냉혹한 현실은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태일의 부모와 가족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태일의 집은 빚더미에 허덕였고 아버지는 가족을 이끌고 서울로 올 수밖에 없었다. 이때가 1954년, 전쟁이 휴전상태로 바뀌고 이 나라가 폐허로 변해 모든 것이 부족하고 막막하기만 한 상태였다.
그는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이 17세의 어린 나이에 돈벌이에 나서야 했다. 급속한 산업화, 그저 성장만을 중요시하던 우리 나라였다. 그 성장의 바람은 평화시장에도 불었다. 평화시장 좁은 다락방에서 전태일은 일을 했다. 자신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사장에게 말해서 근로환경 개선의 꿈을 꾸던 그였지만, 사장은 건방지다는 이유로 그를 잘라버리고 . 계속해서 노동 운동을 벌이던 그는 평화시장에서 쫓겨나고 만다.
가난한 삶에 근로법이 담긴 책을 사서 공부도 하고 해당 관청도 찾아갔지만 그는 아무런 능력도, 가진 것도 없었다. 슬픈 현실이었다. 이름뿐인 법이란 전태일에겐 분노였고, 아픔이었다. 그가 버릇처럼 중얼거리던 말, "누구 하나 죽어야.."
그는 절대 남에게 희생을 강요하지도,, 요구하지도 않았다. 추운 겨울날, 평화시장 거리에서 노동운동이 열리던 날, 전태일은 스스로를 불태워 평화시장 거리에 온기를 뿌렸다.
가난한 노동자의 죽음이었지만 그의 죽음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우리사회에서 비로소 노동운동이니, 근로기준법이니 하는 용어가 사회적으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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