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단재 신채호의 상고사인식
- 최초 등록일
- 2006.06.08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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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채호 선생의 상고사 인식
상고사인식에 대한 평가
목차
신채호 선생의 상고사 인식
상고사인식에 대한 평가
본문내용
단재 신채호 선생의 고대사 인식에서 나타나는 뚜렷한 공헌의 하나는 고대사를 체계화함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점이다. 그가 구상했던 한국 고대사의 체계는 그 이전의 역사인식에서 보여준 체계와는 상당히 달랐다. 과거의 고대사 인식이 대부분 고식적인 입장을 견지하거나 정통론 같은 대의명분론에 입각하여 삼한정통론을 주장하고 있었던 데에 비해 단재는 민족주의적 시각과 통시대적인 시각에 서 있다. 그는 상고시대에 중국에 있던 조선족의 활동을 새롭게 한국사로 수렴하는 한편, 그 전에는 제대로 과학적인 연구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던 한국의 상고사를 여러 가지 논증을 들어 탐구했을 뿐만 아니라 삼국시대사와 연결시키는 문제에서도 종래와는 다르게 새롭게 체계화했고, 부여족을 주족으로 파악하고 단군의 세계가 부여, 고구려로 계승된다는 인식을 보였다. 그 결과 조선 후기의 삼한정통론 이후 삼한 신라로 이어지는 반도 중심의 한국사 이해의 체계를 대담하게 거부하였다. 신채호 선행의 역사학은 자강, 독립주의에 기초한 민족주의적인 것으로 규정되고 있으며, 그의 역사학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는 한국사의 웅혼한 모습은 이미 삼국 이전의 역사에서 보여졌다. 신채호 선생은 우선 단군 및 단군조의 역사성을 강조하고 기자의 단군계승설을 부정하였다. 그는 또한 기자문제 못지 않게 대중국 문제에서 조선사의 주체성을 강조하였다. 그것은 부가 단군의 아들로서 도산회에 참가하여 하우에게 조선의 문화를 전해주어 우가 이를 받아들여 치수에 성공하였다는 것, 팽오가 단군의 신하였다는 것, 산동 산서 지방에 단군 부여족의 식민지가 건설되었고, 이들이 제의 관중과 오랫동안 대결하였다는 것, 강 회 지역의 서언왕이 조선족이었으며 그 서언왕이 36국
참고 자료
고대사 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