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육신과 생육신의 문학
- 최초 등록일
- 2006.06.04
- 최종 저작일
- 20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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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육신과 생육신의 문학을 나름대로 정리했습니다.
자료가 많이 없어서 나름대로 여러 문헌을 참고했습니다.
목차
사육신과 생육신
1. 사육신(死六臣) - 집현전 출신의 문인들과 관련하여
2. 생육신(生六臣)
본문내용
사육신이란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배앗고 찬립(簒立)한 뒤 유신(遺臣) 6인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병자년(1436)에 죽음을 당한 것이다. 유응부(兪應孚)란 무사를 제외하면 그 나머지 5일 - 성삼문(成三問) ․ 이개(李塏) ․ 하위지(河緯地) ․ 유성원(柳誠源) ․ 박팽년(朴彭年)은 모두 기가 막히는 당시의 문인이었다. 사육신의 한편에 생육신이 있었다. 세조의 찬립에 오중(五中 : 五臟)이 상하여 벼슬에 뜻을 버리고 도회(韜晦)와 방랑으로 일생을 마친 사람들이니, 4인의 경학적(經學的) 은자(隱者)를 제하면 나머지 2인, 김시습(金時習)과 남효온(南孝溫)은 또한 당세 일류의 문인이었다.
1. 사육신(死六臣) - 집현전 출신의 문인들과 관련하여
세조의 왕위찬탈 사건 때 단종을 위해서 충절을 지킨 쪽은 처형되어 명분은 세웠으나, 익히고 쌓은 바를 발휘할 기회를 읽고 말았다. 세조를 지지해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도리를 어겼다는 비난을 놀려놓기 위해서도 사업에서 역량을 발휘하는 것으로 보상책을 삼았다. 훈구파로서 토지와 권력을 차지하면서 지탄의 대상이 되는 위치에 섰던 이들 문인은 풍부하고도 화려한 작품세계를 보여줄 수는 있었지만 절실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는 어려웠다.
사육신이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문학에서 대단한 가능성을 보인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반드시 그랬던 것은 아니다. 가장 선배인 하위지는 대책(對策)이나 소(疏)는 잘 지었다고 한다. <농정교서(農政敎書)>를 남겼는데,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근본으로 삼으니, 농사야말로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하고서, 윗사람이 성심으로 인도하면 백성이 농사에 힘쓰게 된다는 내용이다. 실용적인 문장을 앞세웠던 풍조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이와 함께, 현실과의 관계에서 도움이 되는 문학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몇 사람이 거듭 폈다. <동문선>을 보면 박평년, 이개, 성삼문이 지은 <팔가문서(八家文序)>가 나란히 실렸는데, 당대의 문학관을 나타낸 의의가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