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한국교회의 선구자 언더우드
- 최초 등록일
- 2006.04.08
- 최종 저작일
- 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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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안영로가 쓴 언더우드를 요약한 글. 느낀점.
목차
-1부 조선인 이수정이 언더우드를 불렀다-
조선인 이수정은 누구인가
임오군란과 민비의 피난
신사유람단 비수행원으로 떠나는 이수정
이수정의 선물을 거절한 일본인 츠다
세례를 받은 이수정
일본 기독교대회에서 신앙고백하는 이수정
-2부 이수정과 언더우드의 만남-
이수정의 선교사 유치운동
맥클레이 선교사의 조선 상륙
의료선교사 알렌 첫 입국
일본 도쿄 유학생들의 개종
언더우드 목사 안수를 받고 미국을 떠남
선교사 언더우드와 이수정의 상면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와의 상면
-3부 조선에 도착한 두 선교사 가족-
부활절 오후에 도착한 선교사들
언더우드 선교사와 예수학당
예수학당과 김규식 박사
연희전문학교를 창설한 언더우드
언더우드의 새문안교회 설립
언더우드는 어떤 사람인가
언더우드의 결혼과 신혼 선교여행
- 4부 호남선교의 아버지 언더우드 선교사 -
맥코믹 신학교의 첫 귀국보고 강연회
조선으로 떠나는 7인의 선발대
선교사들의 첫 나들이
호남 지방에 선교의 꽃이 피어나고
- 5부 언더우드가의 행적 -
고종황제 탄신기념예배
언더우드가의 가족들
언더우드 가족들이 모여 사는 양화진
- 느낀 점 -
본문내용
조선인 이수정은 누구인가
조선인 이수정은 1842년 전라도 옥과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아버지 이병규는 그의 형인 이달규와 함께 옥과 지방에서는 최초로 천주교를 믿었던 가정의 가장이었다. 그 멀고 먼 전라도에까지 천주교가 들어와서 이수정의 할아버지부터 시작해서 그의 형제들이 모두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수정은 천주교를 멀리하기 위해서 일찍이 고향 곡성을 떠나게 된다. 떠나기 전 그는 금산에 들러 인삼을 매입, 한양에 도착해 실력자인 민영익 찾아갔다. 민영익의 첫눈에 든 이수정은 인정을 받게 되어 민영익의 사랑채에 머물게 되고 개인 비서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민씨들과 교분을 갖게 되면서 잔심부름이 있을 때마다 민비 황후를 대면할 수 있는 자리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임오군란과 민비의 피난
한양을 지키고 있는 근위부대가 있었다. 그런데 이들에게 13개월분의 월급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고, 급기야는 월급으로 지불하는 식량에 모래를 섞어 주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동안 못 받은 월급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받은 군인들은 실망을 넘어서 분노가 오르게 되었다. 병사들은 대오를 정돈하고 궁궐을 습격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이러한 소식을 듣게 된 이수정은 민비를 숨겨 궁궐을 빠져나가 충주 어느 가정에 머물면서 잘 보살폈다. 다행히 난을 일으켰던 병사들은 청나라 군인들의 진압 하에 평온을 되찾게 됐다. 민비는 입궐을 했다.
민비나 민역익은 이수정 때문에 생명을 보존했다며 선처하려고 했지만 이수정은 다 거절하고 다만 제2차 신사유람단이 일본을 갈 때 비수행원으로 갈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부탁하였다.
신사유람단 비수행원으로 떠나는 이수정
이수정은 1882년 10월 인천에서 떠나는 제2차 신사유람단 비수행원으로 인천을 떠나 일본의 관문인 요코하마 항에 도착을 했다.
이수정은 일본의 농학자로 널리 알려진 츠다 센이 기거하고 있는 집을 찾아 나섰다. 그는 일찍이 신문화를 접하면서 일본이 근대화되려면 기독교를 빨리 수용해야 한다고 외치던 신식 인물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