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동학 농민 혁명에서의 갑오개혁과 집강소 설치
- 최초 등록일
- 2005.12.18
- 최종 저작일
- 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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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학 농민 혁명에서의 갑오개혁과 집강소 설치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목차
(1) 일본의 내정간섭과 갑오개혁
(2) 집강소 설치과정
본문내용
농민군의 전주성 해산 이후에 조선정부가 일본군의 철수를 요구하자, 일본은 또 다른 구실을 들고 나왔다. 일본은 5월 12일 내각회의에서 "조선의 내란을 일■청 양국 군대를 공동으로 동원하여 되도록 신속하게 진압하여 혼란을 평정한 다음, 내정개혁을 위한 상설위원 몇 명씩을 일■청 양국에서 파견하여, 대략 조선의 재정 상황을 조사하고 중앙정부 및 지방 관리들의 옳고 그름을 밝혀 부패를 척결케 하며, 그러는 과정에서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경비병을 두어 조선 국내의 안녕을 도모하자"는 양국 공동의 내정 간섭안을 마련한 뒤, 13일 이를 청나라에 제안하였다. 그런데 이 내각회의에서 일본은 "청국 정부와의 협의의 성립 여하에 불구하고 (내정개혁의) 결과가 판명될 때까지는 지금 조선에 파견중인 우리 군대는 절대로 철수할 수 없으며, 또한 만약에 청국 정부가 우리 제안에 찬동하지 않을 때에는 제국 정부는 독자적으로 조선 정부로 하여금 내정개혁을 하도록 한다" 는 방침을 정해두고 있었다. 결국 `두 나라가 같이 조선의 내란을 진압하고 내정개혁에 착수하자`는 제안의 속뜻은, 일본군을 조선에 그대로 주둔시키는 한편 청과의 분쟁을 모색하는 방안이었던 것이었다. 이에 대해 중국은 5월 18일 `조선의 내란은 거의 평정된 상황이고, 조선은 개혁은 스스로 할 일이므로 내정을 간섭할 권리가 없으며, 청일은 철군문제를 계속 의논해야 한다`며 일본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그러자 다음날 일본은 청에 대해 제1차 절교서(絶交書)를 보내고 단독으로 조선의 내정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