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방송, 사회학]스튜어트 홀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5.11.06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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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저명한 사회학자 스튜어트 홀에 대하여 정리한 글 입니다
그의 학문적 경향, 그의 연구 배경, 그의 전기를 간단하게 정리해봤습니다...
목차
1.스튜어트 홀의 지적 성장배경
2.비환론적 마르크스주의의 모색
3.이데올로기와 문화의 이론화
4.새로운 이론적 실천 양식의 개발
5.맺음말
본문내용
스튜어트 홀은 자메이카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거기서 성장했다. 그의 부모는 모두 혼혈이었지만 아버지는 흑인에 가까웠고 어머니는 백인에 가까웠다. 그의 어머니는 스스로를 백인과 동일시했고 식민지 지배국인 영국을 모국으로 생각하려 했으며 인종적 지위 상승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그녀는 자메이카의 독립에 부정적이었으며 독립 이후에도 식민지 시절에 대한 향수에 젖기도 했다. 이러한 가족사의 영향으로 홀은 인종적 정체성 문제를 아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이러한 어린시절의 체험을 통해 그는 주관적, 개인적인 모순이 동시에 구조적인 모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홀은 이 후 옥스퍼드 대학에 들어갔다. 식민지 자메이카에서 영국식 교육을 받고 영국 문학작품에 심취했던 홀에게 옥스퍼드는 낯설면서도 친숙한 것으로 다가왔다. 그가 영국으로 왔을 무렵 자메이카는 진정한 흑인 정체성을 가진 국가가 되었는데, 이러한 변화는 자메이카 역시 그에게 낯선 존재로 다가오게 했다. 홀은 이와 같이 어느 곳에도 ‘고향’을 갖지 못하게 된 것을 ‘친숙한 이방인’, 혹은 고향을 읽고 전 세계로 흩어져야 했던 유대인들에 비유해 ‘디아스포라’의 체험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러한 디아스포라적인 체험으로 인해 홀은 인종 문제를 연구하면서도 단순히 ‘탈 식민지’ 사회의 상황과 연관짓는 데 그치지 않고 ‘흑인’이라는 인종적 범주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다.
그는 영국에 정착하기로 결심한 이후에 양국의 좌파인사들과 새로 교류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교조적 마르크스주의나 스탈린주의에 반대했기 때문에 당에 가입하지는 않았고 이 때 만난 찰스 테일러 등 ‘독립적 좌파’ 인사들과 사회주의 협회를 결성한다.
1956년 영국의 수에즈 침공과 소련의 헝가리 침공이라는 역사적인 두 사건이 터졌다. 특히. 소련의 침공은 영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어, 기존의 사회주의 이론과 체제를 거부하고 새로운 노선을 모색하는 뉴 레프트가 출현하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