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 왕인 박사와 백제 문화의 일본 전래
- 최초 등록일
- 2005.05.10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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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왕인 박사의 도래 등으로 본 백제 문화의 일본 전래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왕인의 도왜(渡倭)
1. 초청을 받은 왕인
2.왕인의 도왜 연도
Ⅲ. 왕인 유적
Ⅳ. 백제 문화의 일본 전래-백제의 이주민-
Ⅴ. 나오며
본문내용
일본의 국가형성에 있어 백제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일본 곳곳에 백제인들이 남긴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백제가 선진문화를 일본에 전해주는 역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백제인이 일본에 진출해 백제 문화를 이식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일본에 이주한 이주민들은 일본의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큰 역할을 수행 하였고, 이것이 일본사회의 역사발전을 이루는데 큰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백제․신라 양국과 왜와의 관계를 살펴보면 대조적인 면을 찾을 수 있다. 왜는 신라를 국초부터 시작하여 무려 50여 차례나 공격할 정도로 적대적이고 소극적인 관계로 일관 하고 있다. 반면 백제와 왜의 관계는 시종 우호적이고 적극적인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일본사기≫와 ≪고사기≫에서도 일본 내에서의 백제 이주민의 많은 역할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양자의 관계는 일방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삼국사기≫에 백제의 대왜관련 기사는 397년에서 428년까지 7회, 7세기 중반에 6회, 총 13회 정도로 나타나고 있어 ≪일본서기≫와는 아주 대조를 이루고 있다. 당시 백제의 대외관계의 비중은 중국과의 외교에 중점을 두고 있었고 반면에 왜는 국제관계는 거의 백제에 매달릴 정도로 대외관계면에서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인식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일본학계에서는 백제의 이주민들을 “귀화인”이니 “기술노예”로 격하시켜 이들의 역할을 과소평가해 왔다. 또한 그들은 일찍이 정치적, 군사적 강국이어서 한반도로부터 철, 기술노예, 노동력을 공납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당시의 한반도 삼국의 정세나 문화의 선진성, 고고학 자료에 의거 해 볼 때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오히려 삼국 가운데 특히 백제 이주민들의 문화활동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백제 이주민의 역할에 대한 연구는 왜곡된 일본 고대사를 바로잡는데 필요할 뿐만 아니라 자료가 부족한 백제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