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리어왕-영국엔 에드먼드가, 우리나라엔 홍길동이
- 최초 등록일
- 2005.01.24
- 최종 저작일
- 2004.12
- 1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덕성여대 독서세미나 04년도 자료
본인의 생각으로만 작성
목차
없음
본문내용
리어왕을 읽으면서 ‘에드먼드’란 인물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 계기는 그가 처한 상황이 옛날 우리나라의 적서차별과 같았기 때문이다. 적서차별은 우리나라와 같이 성리학을 믿는 동양의 몇몇 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인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평등과 자유의 개념이 널리 퍼지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서양에서도 예전에 적서차별이 존재했다니…….
“나 역시 육체는 균형이 잘 잡혀 있고, 마음은 우아하고, 체격도 근사하다. 어디가 정실의 자식보다 뒤떨어지나? 왜 우리에게 서자라는 낙인을 찍는가?”
에드먼드의 가슴속에 맺혔던 말이다. 에드먼드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서자의 위치에서 벗어나고자 음모를 세운다. 계략을 꾸며 적자인 에드거 형을 집에서 내몰고 아버지에게 거짓 신임을 얻는다. 나는 에드먼드가 정말 이런 방법밖에 쓸 수 없었는지 너무 안타까웠다. 에드먼드의 방법과 우리나라의 적서차별 문제를 다루고 있는 「홍길동 전」에서 홍길동 자신이 서자의 차별을 견디지 못해 행했던 방법과는 확연하게 다름을 알 수 있었다. 홍길동은 자신이 서자이기에 ‘호부호형’을 하지 못함을 아버지에게 호소해 호부호형을 허락받고 자신의 자아를 찾기 위해 스스로 길을 떠난다. 에드먼드의 父子를 갈라놓는 사악한 음모와는 차이가 있다.
나는 이러한 서자극복의 방법론 차이 때문에 결말이 비극과 희극으로 나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자아를 찾기 위해 떠나 백성을 위한 의적으로 활동하고 결국은 율도국을 세워 서자의 지위를 극복해 왕이란 최상의 지위로 오른 길동은 그 서자극복의 정당성과 올바름의 대가로 희극적 결말을 얻으나, 남을 속이고 다른 사람을 희생하여 서자에서 적자의 지위로 오르려 했던 에드먼드는 죽음으로써 쓰디 쓴 최후를 맞게 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