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자취를 찾아서
- 최초 등록일
- 2004.10.06
- 최종 저작일
- 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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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굿·놀이·연극
1.1. 공동의 절차
1.2. 중세체제로의 변모
2. 고구려 백제의 놀이와 연극
3. 신라쪽의 사정과 <처용극>
3.1. 굿으로서의 <처용무>
3.2. 연극으로서의 <처용극>
3.3. 연극으로서의 처용극
3.4. 다섯가지 놀이
본문내용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동해용·남산신·북악신·지신 등이 나와서 춤을 추었다는 것은 사람이 그런 가면을 쓰고서 굿을 했다는 말이다. 헌강왕이 남산신의 춤을 추고서 남산신의 모습을 탈에다 새기게 했다는 기록이 그 점을 입증하는 구체적인 증거이다. 남산신·북악신 이하 서라벌 주변의 수호신들이 춤을 추면서 굿을 한 내력은 신라 초기까지 소급될 수 있을 것이다. 왕이 차차웅 노릇을 하던 단계에서는 그런 행사를 직접 담당하는 것을 관례로 삼았다고 보아 마땅하다. 그런데 그 뒤에는 국가적인 행사로서가 아니라 민간전승으로 지속되었을 수 있는 수호신굿을 헌강왕은 어떤 특별한 사유가 있어서 부활시키지 않았던가 한다. 사방에서 민란이 일어나 후삼국시대를 예언하는 위기가 벌어진 것이다. 헌강왕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각 지방을 순회하면서 동서남북의 수호신굿을 새삼스럽게 거행했다고 생각된다. 그때를 <삼국유사>의 문면에서 번영을 누리고 있는 태평성대라도 묘사한 대목은 축원하는 문구를 표면적으로 인정되는 사실에다 맞춤 것이라고 보는 편이 적당하다.
참고 자료
한국문학통사, 조동일